[진의환 고문 매경칼럼 게재] 초국적기업의 용인술
대기업 중역 5명이 면접관으로 나란히 앉아서 입사 지원서를 훑어보고 있다. 곧 입사 지원자 5명이 긴장된 모습으로 들어와 차례로 앉는다. 각자 준비해 온 자기소개를 하고 면접관이 이것저것 전형적인 질문 몇가지를 한다. 지원자 중 홍일점 여성 지원자가 아이 컨택(Eye Contact)을 면접관 5명과 고르게 하며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답변을 가장 잘했고, 나머지는 고만고만해서 면접 점수 차별화가 어려워 면접관들은 고민한다. 이때 면접 좌장이 마지막으로 할 말 있느냐고 물으니 홍일점에 비해 점수가 불리하다고 느낀 지원자 한 명이 일어나 자켓을 벗어 제치고 외친다. “저는 영업을 지원합니다! 영업을 잘하려면 얼굴이 두꺼워야 하는데 제가 그렇다는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라면서 갑자기 개사한 유행가를 군가처럼 좌우, 상하 반동을 주며 씩씩하게 한바탕 불렀다.
한국에서 경험한 실제 상황이다. 그 지원자에 대해서는 탈락 의견을 냈다. 그는 갑자기 노래 부르는 ‘오버 액션’으로 얼굴이 두껍다는 것을 어필했지만 결과는 역효과이다. “영업을 잘하려면 얼굴이 두꺼워야 한다”는 말은 객관성이 없다. 만일 면접관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채용 면접을 한다면 그는 부적격자를 뽑는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면접관 오류’가 ‘주관의 객관화’이다. 자신만의 주관이나 경향을 객관적 사실로 확대해석하고 그 잣대로 조직의 사람을 뽑아서는 안된다. 주관의 객관화 같은 면접관 오류는 많다. 특히 한국인 면접 좌장일 경우, 초국적기업에서 잘못된 질문 하나가 그 초국적기업의 브랜드와 이미지를 훼손시킬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더 주의해야 한다.
필자는 초국적기업의 임직원으로서 해외에 파견되어 생산, 판매 시설을 신설하는 그린필드 프로젝트(Greenfield Project)를 여러 차례 수행한 바 있다. 프로젝트 초기에 할 일 중 하나가 인사부장, 영업부장, 생산부장 등 현지인 핵심간부를 채용하는 것이었다. 초국적기업에서 현지채용인, 줄여서 ‘현채인’은 흔히 HCN(Host Country Nation)이라 부른다. 핵심 HCN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면접관 오류를 예방하기 위해 현지 파견된 한국인 임직원이 꼭 염두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이 있다.
우선 많은 지원자 중 서류심사(Initial Screening)와 간단한 전화 인터뷰를 통해 입사 의지를 확인하고 면접 대상자를 확정한다. HCN 간부 후보자에 대해서는 대면 면접을 하되 그 시간은 1시간 정도가 적당하다. 한국인 면접 좌장은 우선 HCN 후보자를 편안하게 해줄 대화 스킬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어떤 교통편으로 왔는지, 찾아오는데 불편은 없었는지를 묻고, 넥타이가 잘 어울린다는 등의 멘트로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을 한 다음 천천히 면접을 시작한다.
면접 시작 후 3~5분 내에 갖게 되는 후보자의 첫인상에 대해 너무 많은 점수를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시작하면 그 후보를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한 조사에 의하면 한국에서 첫인상이 채용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최소 60% 이상으로 막강하다. 그만큼 한국인들은 첫인상에 많이 흔들린다. 첫인상으로 호감이 간 후보에 대해서 대개의 면접관들은 업무능력도 좋을 것이라고 일단 추정하고, 지원서에서 언급하지 않은 개인 신상을 파악하고자 안달이 난다. 나이, 배우자, 부모 직업, 출신지, 장애나 질병 유무 그리고 종교 등에 대해 많은 관심이 가겠지만 절대 물어봐서는 안된다.
또 첫인상이 맘에 안 들거나 기대와 다른 경우, 잘못된 질문을 하여 면접관 오류에 빠질 가능성을 스스로 증폭 시키는 경우가 있다. 젠더 이슈, 왜 결혼을 안 했는지, 문신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의 예민한 질문 그리고 전 직장에서 승진을 못했다는 것은 능력이 없다는 것 아닌지, 자주 직장을 옮겨 다니는 것은 충성심 결여의 증거가 아니냐는 등의 가혹한 질문이 삼가야 할 잘못된 것이다.
해외에서 인사부장을 잘못 채용한 경험이 있다. 인사부장은 외부노동조합을 상대하는 사람이므로 강력한 카리스마가 있는 후보가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면접에 들어갔다. 그래서 부드러운 인상의 차분한 후보 대신, 덩치가 크고, 눈이 부리부리하고, 목소리가 걸걸하며 외모에서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는 후보를 채용했다. 그 인사부장 채용 후 처음에는 잘 뽑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강한 성격으로 인해 외부노조와의 충돌 뿐만 아니라 HCN 간부들까지 원성이 높아졌고, 그의 안하무인 거친 리더십에 조직의 단결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서둘러 그 인사부장을 해고하여 더 큰 사태는 예방했지만, 카리스마가 있어야 사람들을 잘 리드할 것이라는 기대 추론의 선입관과 외적 첫인상에 많은 점수를 준 면접이 얼마나 큰 오류인지를 깨닫게 한 값진 시행착오였다.
또 다른 면접관의 오류는 영어 또는 현지 언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적 에러에서 비롯된다. 단답형이 아닌 후보자의 긴 답변 중에서 면접자가 긍정적인 정보를 먼저 캐치하고 이해하면 후하게 평가하게 되고, 반대로 부정적인 답변을 먼저 이해한 경우 그를 박하게 평가하는 오류이다. 한국인이 흔히 하는 면접관 오류 중 하나는 권위적인 질문 태도, 또는 험악한 톤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빈약한 언어 구사 때문에 질문을 장황하게 하면서 그 안에 답이 들어 있는 자문자답형 질문과 호, 불호를 내포하는 질문도 있다. 자기 과시적인 면접관은 질문을 하면서 “내 경험상 ~~“등의 말을 부지불식 간에 넣기도 한다. 이런 오류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현지 전문가를 꼭 배석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다.
논어 안연편(顔淵篇)에 “지혜롭다는 것은 지인(知人), 즉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라 했다. 같은 민족이 아닌 타 민족 후보자를 짧은 시간의 면접에서 단박에 알아본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면접관은 지혜롭게 그 나라 사람들의 습성, 태도, 역사, 문화 등을 사전에 충분하게 공부하고 면접에 임해야 한다. 다년간의 해외 근무 경험에서 체득한 채용하지 말아야 할 부적격 후보는 어느 나라이든 같다. 그 부적격자의 대표적 예는 아래와 같다.
첫째, 어색한 예로 한국이나 우리 회사를 과다하게 칭송하는 사람.
둘째, 외모나 첫인상에 너무 신경 써서 면접관을 현혹하는 사람.
셋째, 이력서에 소소한 것까지 과장해서 많이 적은 사람.
넷째, 우리 회사 홈페이지에 공개된 정보조차 안 읽고 온 사람.
다섯째, 현재 근무하거나 전 직장의 자료를 가지고 와서 담당했던 업무를 설명하거나 질문에 답하는 사람.
면접 후에도 어떤 후보에 대해 의심 또는 불확실한 면이 남아 있다면 채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일단 채용 후에는 어느 정도의 기간까지는 믿음을 주고 지켜봐야 한다. ‘의심나는 사람은 쓰지 말고, 일단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라는 ‘의인불용 용인불의 (疑人不用 用人不疑)’가 백범 김구, 호암 이병철 등이 좋아한 용인술의 핵심이다. 이는 14세기에 완성된 역사책 ‘송사(宋史)’에 나오는 말이지만, 21세기 초국적기업의 인사에도 적용될 수 있는 명언이다.
그렇게 채용한 HCN이 호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점차 두각을 나타내는 뛰어난 인재인 ‘낭중지추(囊中之錐)’라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함이 확실해지고, 상관 앞에서는 복종하지만 뒤에서는 불평하는 면종복배(面從腹背)형의 간부라면 회사에 해가 되지 않도록 빨리 정리해야 한다. 실적부진이나 사규 위반행위 등이 있으면 HCN을 엄하게 징계 또는 해고하되 너무 잔인하게 조치해서는 안된다. 만일 HCN이 고의 없는 실수를 하고 그것을 진심으로 반성하는 경우 아량을 베풀되 조직의 기강이 느슨하지 않도록 경계를 확실히 정해야 한다. 그것이 ‘엄하되 잔인하지 않고, 관대하되 해이하지 않게’라는 엄이부잔 관이불이(嚴而不殘 寬而不弛)의 원칙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성대중(成大中)의 청성잡기(靑城雜記)에 나오는 것으로 초국적기업의 인사권자가 그의 최종 결심 전 되새겨 볼 만한 금언(金言)이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소프트랜더스 고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 교수]
기사원문: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초국적기업의 용인 - 매일경제 (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