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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의환 고문 매경칼럼 게재] 그래도 판단은 어렵다!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3-02-28 18:06:10

‘서양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대 그리스 히포크라테스의 잠언집(Aphorisms)에 나오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Life is short, Art long)”는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유명한 명언이다. 그러나 그에 이어지는 뒤 구절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기회는 순식간에 지나가고(Opportunity is fleeting), 경험은 겉보기와는 달리 위험하며(Experience is treacherous), 판단은 어렵다(Judgement is difficult)”가 그것이다.

 

사실 기업가나 경영자에게는 뒤 구절이 더 와 닿는 명언이다. 인생은 일기일회( 一期一會) 즉, 단 한번의 기회이고 단 한번의 만남이니 중요한 것이라 하지만, 그 안의 또 다른 기회는 잘 잡히지 않는다. 보편적이지 않은 특수한 경험은 자칫 인지적 편향성을 남겨 놓을 때가 있어 위험하다. 경영자는 자신의 인지적 편향성에 빠지지 않으면서 집단사고(Groupthink)의 오류에서도 자유롭고자 부단히 경계하지만, 비정형적 사안에서 합리적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린다. 히포크라테스가 말한대로 판단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다. 그 어려운 판단을 하나하나 모아서 큰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기업가와 경영자의 역할이니 더욱 그렇다.

 

18세기 이후 고전주의 경제학에서 경제주체인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기적이라고 상정했다. 인간은 경제적 요인을 고려하여 자기에게 쾌락과 이익이 최대화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 하며, 고통과 손실을 최소화하는 ‘합리적 경제인’(Rational Economic Man)이다. 따라서 그의 판단과 의사결정은 경제적으로는 단순하고 합리적이다. 그런 합리적 의사결정에 기초하여 모든 경제적 행동을 한다고 보는 것이 고전경제학의 기본 전제였다.

 

그러나 현대 경영 환경의 복잡성과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고전경제학이 상정한 ‘합리적 경제인’의 판단과 의사결정이 늘 합리적이고 옳다는 보장은 없다.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압도적 현실인 상황에서 기업가나 경영자가 합리적 판단의 트랙에서 이탈하여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는 원인에는 무엇이 있을까? 경영학과 심리학의 접점에서 설명할 수 있는 원인과 그 대책을 짚어본다.

 

첫째, ‘헤일로(Halo) 효과’나 ‘워런 하딩(Warren Harding Effect) 효과’가 설명하는 것처럼 일부를 보고 전부를 평가하는 오류이다. 헤일로는 성자의 몸 뒤에 있는 둥글게 비치는 후광(後光)을 의미하니, 사람이나 사물의 일부를 보고 유추하여 전체를 평가하는 편향된 판단 오류이다. 안경 쓴 사람은 공부를 잘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 예이다. 워런 하딩(Warren G. Harding)은 1920년 선출된 미국의 29대 대통령이다.본래 정치적 배경이나 능력은 없었지만, 목소리가 중후하며 인물이 수려하고 근엄하여 대통령같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압도적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는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무능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외모 덕분에 유능하거나 정직해 보이는 효과를 워런하딩 효과라 한다. 이런 경고성 비유를 참고하여 유능한 임직원의 선발과 적재적소 보임이라는 인사에서 경영자 및 관리자는 오판을 최소화해야 한다.

 

둘째,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 Cognitive Dissonance)와 그에 대한 자기 합리화적 대응이다. 인지부조화란 미국의 심리학자 리언 페스팅거(Leon Festinger)가 1957년 처음 쓴 용어로서, 평소 자신이 가진 신념, 사고, 의견, 의도 등의 인지와 모순된 태도나 행동을 보인 경우 발생하는 내적 불쾌감, 긴장감 또는 불안감 등 감정 상태를 말한다. 내적 감정상태는 외부로 표출되지 않는 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불안정한 감정 상태를 해소하고자 기존의 신념, 사고, 의견 등 인지를 수정하는 것이 아니고, 모순된 태도나 행동을 정당화시키려는 노력을 추가적으로 하기 때문에 의사결정이나 판단의 오류가 고착된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부동산 투자는 기업의 정도가 아니라는 신념을 가진 경영자가 어떤 이유로 부동산 투자를 한 번 했고 실패로 끝났다고 가정하자. 그는 인지부조화에 의해 편치 않은 감정 상태에 처할 것이고 그 해결 방법은 평소 지론대로 부동산 투자를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그 실패는 단순히 운이 없어서 그랬다면서 부동산 투자를 다시 한다면 그는 인지부조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판단의 오류를 계속할 위험에 스스로 처하게 된다. 리언 페스팅거는 사이비 종교 집단에 빠진 사람들이 그 집단의 주장이 틀린 것이라고 밝혀져도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인지부조화와 정당화 노력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세번째, 심리학에서 ‘제 3의 법칙’이 있다. 같은 행동을 하는 세 사람이 있으면 그들을 본 사람들도 동조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비자>에 나오는 고사성어 삼인성호(三人成虎)와 비슷하다. 숫자 1이나 2는 개별적인 것으로 힘이 없지만, 3부터는 대세라는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여 규칙같이 느껴지게 하는 마력이 있다. 3명이 같은 방향을 쳐다보고 있으면 부지불식 간에 나도 그에 동조하여 쳐다보게 되고, 세명이 일관되게 거짓 정보를 주면 그를 믿게 된다는 것이다. 경영자는 가까운 사람들의 의견을 받게 된다. 그들의 오류가 경영자의 의사결정에 이어지지 않도록 시스템적, 조직적 여과장치가 필요하다. 그 중에 하나가 ‘RAPID’이다.

 

경영자의 비정형적, 전략적 의사결정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불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해야 하는 것이므로 위험성이 항상 내포되어 있다. 불확실성의 환경에서 의사결정 하는 기법으로는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 명목집단기법(Nominal Group Technique) 그리고 델파이 기법(Delphi Technique) 등이 있다. 이는 모두 어느 집단의 많은 구성원이 참여하여 아이디어를 생성해 나가는 과정이다. 한국의 기업들은 전통적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기안용지’라는 서식을 활용하여 각 분야의 의견을 수렴하고 최고 경영자의 결심을 얻어 내는 절차와 방법을 사용했다. 그런 과정을 세계적인 경영 컨설팅사(Bain & Company)가 효과적인 의사결정 모델로서 발전시켜 보급시킨 것이 ‘RAPID’ 이다.

 

RAPID는 스펠링 자체만으로도 영어와 포어 공히 ‘빠르다’라는 뜻의 형용사이나, 여기서는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팀의 역할을 나타내는 키워드의 첫 글자이다. 의사결정 과정을 Rapid하게 설명해 본다. 예를 들어 어떤 해외 시장의 점유율 향상을 위해 판매팀에서 현지에 신공장을 짓자고 발의한 경우 판매팀은 R 즉, Recommendation을 한 것이다. 신 공장 건설 제안에 대해 생산팀은 A 즉, Agree할지 여부를 검토한다. 공장 건설을 실질적으로 담당할 엔지니어링 담당 팀은 P 즉, Perform의 역할을 할 것이니 건설에 소요될 예산과 문제점 등을 파악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재경이나 경영지원 등은 전문적 조언과 필요한 자원을 투입해주는 I 즉, Input의 역할을 할 것이다. R, A, P, I 가 모두 구체화되고 어느 정도 정보가 조직적으로 취합된 상황에서 최고 경영자는 결단의 D 즉, Decision Making을 하게 된다.

 

RAPID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R, A, P, I의 역할을 담당하는 임직원이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의견을 자유롭게 확실히 발표할 수 있는 기업문화가 필요하다. 이 의사결정 모델은 비정형적, 전략적 판단에 힘들어하는 경영자로 하여금 인지적 편향성, 집단사고, 헤일로 효과, 워런 하딩 효과, 인지부조화 그리고 제 3의 법칙으로부터 어느 정도는 자유롭게 해 줄 것이다. 그래도 경영자의 판단과 결정은 어렵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소프트랜더스 고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 교수]

기사원문: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그래도 판단은 어렵다! - 매일경제 (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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