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공지/뉴스

[진의환 고문 매경칼럼 게재]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담론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2-05-19 09:47:25

[진의환 고문 매경칼럼 게재]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담론

 

보수와 진보는 정권의 색이다. 색이 바뀌었다. 대다수의 국민은 색에 관계없이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도를 실천하는 실용적인 정치를 기대한다. 청이불각(淸而不刻), ‘청렴하되 각박하지 않은 정부’ 그리고 화이불탕(和而不蕩), ‘화합하되 휩쓸리지 않는 정치’이다. 위대한 학자는 그가 띤 색에 상관없이 늘 역사에 있다. 소주병에 붙은 글씨체 때문에 생각나는 역사 속 인물이 있다. 고(故) 신영복(1941~2016) 교수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 여러 책이 있는데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라는 부제가 붙은 책이 <담론>이다. 그는 책을 여러 권 냈지만 책을 집필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냥 신문에 연재한 것, 옥중 편지 그리고 강의 녹취 등이 책으로 나왔다면서 <담론>을 시작한다. 그의 첫 담론은 역시 학자 답게 ‘공부(工夫)’이다. 그는 “공부라는 한자에서 공(工)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것이고, 부(夫)는 공부를 하는 주체가 사람 인(人)임을 의미한다”고 하여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공부는 살아 가는 그 자체이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의 존재 형식이니,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라는 대목에서는 평생 공부만 하면서 김동리(金東里)의 ‘등신불(等身佛)’이 아닌 ‘등신서(等身書)’를 펴낸 가형(家兄)이 떠오른다. 등신서, 즉 자신의 키 높이 만큼의 책을 펴내는 것을 일생 공부의 목표로 삼았던 가형이 얼마 전에 총 81권의 책을 출간해 그 꿈을 실현했다.

신영복 교수의 공부에 대한 담론대로 지금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오는 변화를 따라잡고 주관을 가지고 살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 담론(談論)이란 ‘사회의 구성원들 간에서 특정 주제에 대하여 생성되고 소통되는 이야기’이다. 주지하다시피 4차 산업혁명의 중심 단어는 변화이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의 담론은 변화에서 시작되는 데 마침 <담론>에서 신영복 교수는 “진정한 공부는 ‘변화와 창조’로 이어져야 한다”고 단언하였으니, 견강부회(牽强附會)같지만 4차 산업혁명의 담론을 공부하고자 한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변화’가 과연 인류의 행복에 가치 있는 것일까” 라는 회의(懷疑)가 4차 산업혁명 담론의 끝판왕이다. 현재 진행 중인 4차 산업혁명의 가치에 대해서는 긍정적 담론만큼 부정적인 것도 많다. 그 가치담론을 구체적으로 나누어 적시한다면 다음 두가지 질문에서 시작한다. 메타버스, 자율주행자동차 그리고 인공지능을 가진 안드로이드 로봇 등 핵심기술의 이기(利器)가 인간을 유토피아로 인도할까? 인공지능 로봇과 사이보그 등 포스트휴먼(Posthuman)이 기존의 인간관계에 끼어들면 어떤 변화를 초래할까?

인공지능 로봇이 힘들고 어려운 일은 다 해줄 것이니 인간은 연장된 수명에서 취미생활이나 하면서 유유자적 유토피아(Utopia)를 즐기면 된다는 과도한 낙관론은 자제해야 하겠지만, 일부는 사실일지라도 4차 산업혁명의 결과는 디스토피아(Dystopia)라고 단정하는 지나친 비관론도 위험하다. 비관적 담론은 혁신기술의 사회적 수용성을 낮추는 역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직 진정한 자율주행 단계인 레벨 4 (Level 4)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자율주행차의 실 도로 주행 중 시스템 착오로 사고가 발생하고, 그 결과 탑승자가 사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 ‘트롤리 딜레마(Trolley Dilemma)에 대한 윤리적 알고리즘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다. 이런 사실만 가지고 이야기 한다면 자율주행차에 대한 담론은 비관적으로 흐를 수 있다. 그런 영향인지는 몰라도 미국 사회에서 자율주행차를 타겠다는 사회적 수용성은 아직 50%를 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자율주행차를 개발, 생산하고 있는 이해관계자들은 긍정적 가치담론의 생산과 전파에 힘쓰고 있다. 즉, 자율주행차가 개발되고 상용화되면 노인과 어린이도 운전할 수 있으며 교통사고와 혼잡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치담론의 전파는 사회적 수용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정부나 국제기구를 움직여 제도 및 법규의 보완과 정비를 촉진하는 순기능이 있다.

국제경제포럼(WEF)의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기술혁명”이라고 4차 산업혁명을 설명했다. 그러나 그 변화는 단순한 산업의 변화를 넘어서 인간의 삶에 깊이 침투하여 인간관계와 정체성까지 변화시킬 것이다. 행복과 정체성은 ‘관계’에서 나오므로 결국 4차 산업혁명의 가치담론 즉, ‘행복해질까’에 대한 답은 관계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고, 그 사회학적 ‘관계이론’을 주창한 학자는 독일의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 1858~1918)이다.

짐멜은 돈, 술, 식사, 옷 등 일상 생활에 들어온 ‘사소한 것’들이 인간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사회학 이론을 발전시켰다. 비록 그의 시대에는 SNS, 인공지능 로봇 등이 없었지만, 현재 그것들은 우리의 일상에 들어온 ‘사소한 것’들이므로 그의 이론적 시각에서 본다면 현재의 SNS와 인공지능 로봇 등이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확실하다.

그는 <사회학>에서 인간의 ‘양자간 관계’와 ‘삼자간 관계’를 설명하였다. 양자 관계일 때는 문제없었지만 삼자 관계일 때 ‘비밀’ 때문에 한 사람이 소외된다고 한다. 비밀을 두 명만이 공유하면 그 둘 사이에는 끈끈한 연대감이 생긴다. 그러나 인간 사이에 인공지능 로봇이 끼어들어와 삼자 관계가 되면 어떤 변화가 올까? 인간 중 한명은 로봇에게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 하는 실수를 할 것이다. 로봇은 다른 인간에게 자신의 비밀을 공유하면서 배신하지는 않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사소한 것’ 때문에 인간 사이의 연대감과 신뢰는 점점 약해진다.

SNS,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전체 가구의 40%에 육박하는 1인 세대의 증가는 한국 사회를 극도로 미세한 단위로 쪼개지는 “나노(Nano)사회”로 몰고가고 있다고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 진단하고 있다. 한국의 1인 세대는 월든(Walden) 호수가의 헨리 데이비드(Henry David Thoreau)처럼 숲 속에서 홀로 오두막을 짓고 사는 대신, 도시의 한 공간에서 SNS와 배달 음식으로 살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나노사회 일지라도, 개개인은 완전 고립된 존재는 아니고, 수많은 관계 속에 살고 있으니, 그 속에서 형성되는 자신의 위상이 곧 정체성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족과 사회의 일원으로서, 직장 조직의 일원으로서 또는 특이점에 도달한 인공지능과 인간으로서 그 내부 관계와 정체성은 변할 수 있다. 가치담론에 대한 답은 여기에 있다. 인간이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를 기계나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양자관계처럼 어떻게 끈끈하게 유지시킬 것인지, 그 관계 속의 정체성을 얼마나 아우라(Aura) 있게 보전 시킬 지에 행복은 달려 있다.

실수는 인간의 몫이고 용서는 신의 몫이라는 말은 있지만, 인간이 창조한 산업혁명의 이기(利器)에 인간관계와 정체성이 훼손되고 행복이 좌우되는 실수는 용서 받지 못할 재앙이 될 수 있다. 이는 비관적이 아니라 자경적(自警的) 담론이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소프트랜더스 고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 교수]

기사원문: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담론 - 매일경제 (mk.co.kr)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