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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의환 고문 매경칼럼 게재] 인플레이션과 사회 변화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2-07-25 17:41:16

[진의환 고문 매경 칼럼 게재] 인플레이션과 사회 변화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 1737~1805)의 허생전(許生傳)을 자세히 보면 조선의 취약한 경제 상황과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읽을 수 있다. 허생은 부인의 바가지 긁는 소리에 책을 덮고 나와서 한양 제일의 부자를 찾아가 그에게서 무담보로 일 만 냥을 신용대출 받았다. 그 돈으로 경기도 안성에 가서 대추, 감, 배, 귤, 유자, 석류 등 모든 과일을 다 사서 창고에 보관했다.

그러자 전국에 애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은 농업 (Agriculture)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농작물의 가격 급등으로 인해 촉발된 인플레이션을 말한다. 허생은 거의 열 배 오른 가격으로 과일을 되팔고, 제주도로 가서 말총을 매점매석해 다시 큰 돈을 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도적떼를 무인도로 이끌고 들어가 농사를 짓게하며 정착 시킨다. 그 후 흉년이 든 일본에 누적된 잉여 농산물을 수출하여 백만냥을 벌었으나, 그 중 절반인 50만냥을 바다에 버린다. 취약한 조선의 경제 현실에서 갑자기 50만냥의 거액이 시중에 풀리면 인플레이션이 야기될 것으로 우려한 것이다.

연암이 우려했던 취약한 경제에서의 인플레이션은 그의 사후 60 여년만에 현실로 나타났다. 대원군은 경복궁을 재건하고 싶었는데 국가의 재정은 바닥이었다. 세수(稅收)를 증대하고자 서원(書院)을 철폐하여 그 전답에서 세금을 걷고, 면세지 (免稅地)를 줄였지만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결국 대원군은 ‘시뇨리지 효과’를 노리고 당백전(當百錢)을 발행했다. 시뇨리지(Seigniorage)란 중세에 주화 발행권이 봉건영주(Seignior)의 특권이었기에 나온 말인데, 화폐의 액면가액에서 발행비용을 뺀 금액이다. 이는 곧 영주 또는 국가가 화폐 발행으로 누리는 이익을 말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지폐는 20 달러이든 100 달러이든 그 인쇄비용은 약 10센트 정도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돈 되며 부가가치 높은 사업권이 시뇨리지이다.

당백전은 기존의 화폐 상평통보보다 구리의 양은 5~6배 많지만, 명목가치는 100배이니 엄청난 시뇨리지가 있는 것이다. 당연히 시중에서는 상평통보를 녹여 당백전으로 몰래 만드는 변조가 횡행하니,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몰아낸다는 그레샴의 법칙(Gresham's Law)이 나타났다.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결국 대원군은 발행 6개월 만에 당백전의 주조를 금지했다. 당시 당백전 하나 없는 서민들 사이에서 자조적으로 나온 말이 ”땡전 한 푼 없다”이다. 당백전은 줄여서 ‘당전’이고, 그것을 세게 발음하면 ‘땅전’이고, 곧 발행 중지되니 ‘땡전’이 된 것이다. 인플레이션은 화폐가 유발하는 재난이고, 그런 인플레이션이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꾼 역사적 사례는 많다. 세수가 늘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당백전은 조선의 쇠락을 가져왔고 로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세금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자 기원 후 로마 황제들은 은화에 값싼 금속을 넣고 은의 함량을 크게 줄이니, 자연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이는 곧 로마의 쇠락으로 이어졌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 16세기 중반 잉글랜드 국왕들도 더 많은 화폐를 만들기 위해 은의 함량을 3분의 1로 줄이니 물가는 40%나 급등하는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야기했다.

17세기 후반에 들어 시뇨리지를 맛본 권력자 국왕은 금화나 은화의 함량 조작없이 아무리 퍼 써도 마르지 않는 화수분(貨水盆)을 만들 방법을 찾게 된다. 그 방법을 영국의 국왕 윌리암 3세에게 알려 준 사람이 패터슨(William Paterson)이다. 그는 프랑스와의 전쟁 경비를 마련하고자 고심하는 국왕에게 주식을 발행하여 주주(株主) 은행을 설립하고, 그 은행을 통해 자금을 모아서 전비를 대줄 테니, 대신 보상으로 화폐 발행권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해서 1694년 설립된 영국은행(England Bank)이 세계 최초의 중앙은행이다. 영국은행은 예금을 모아서 왕의 전비를 융자해 주다가, 후에는 영국의 국채를 인수하여 정부에 자금을 조달해주었다. 또 일반 상업은행에게는 자금을 대출해 주는 은행의 은행으로 자리잡고 화폐 발행권을 독점하였다.

영국보다는 조금 늦었지만 프랑스도 영국 왕과 같은 이유로 중앙은행을 가지게 되었다. 스코틀랜드에서 살인죄를 짓고 탈출한 존 로(John Law)는 프랑스 루이 15세의 섭정 왕인 오를레앙 공에게 접근하여 “지폐도 신용만 있다면 금과 은같은 구매력 있는 돈”이 된다고 설득하여 지폐를 발행할 수 있는 은행을 1716년 설립했다. 그 은행이 왕립은행(Bank Royal)으로 바뀌고 프랑스 중앙은행이 되었다. 당시 프랑스는 금 본위제 국가였기 때문에 지폐를 발행하는 만큼 금을 보유해야만 했다. 그러나 존 로는 프랑스 땅인 미시시피(미국 루이지애나)에 큰 금광이 있으니 금을 보유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얼버무리고 지폐를 발행하였다. 결국에 가서 미시시피에서 금이 안 나온다는 소식에 지폐 가치는 폭락했고 프랑스 경제는 망가지기 시작하여 그 인플레이션은 대혁명 때까지 지속되었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존 로를 프랑스 대혁명을 이끈 장본인이라고 비꼬았다. 존 로는 여장(女裝)을 하고 베네치아로 탈출하여 거기에서 곤궁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

금본위제 하에서 금은 효과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예방했었다. 다만 금으로 태환이 안되는 지폐의 과도한 발행은 문제가 된다. 존 로와 프랑스의 경우에서 보듯이, 지폐의 출현은 인플레이션이 더 쉽고도 빈번히 일어날 터전을 마련해 준 것이다.

독일 지폐가 일으킨 심각한 하이퍼(超)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은 전 세계를 재앙으로 몰아넣었다.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독일은 1918년 베르사이유 조약에 따라 1,320억 마르크를 배상해야 했다. 독일정부는 배상채무를 희석시키고자 고의로 지폐를 마구 찍어내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일으켰다. 1923년 독일의 한 시민이 그 날 먹을 식료품을 사려고 손수레에 지폐를 가득 싣고 가고 있었다. 강도가 지폐 주인을 제압하고, 지폐는 도로에 엎어 버린 다음 손수레만 강탈해 도망쳤다.

이렇게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고통 받는 대중에게 <나의 투쟁> 히틀러가 혜성같이 등장했다. 그는 지폐만 찍어내는 나약한 정부 대신 강력한 독재 정부가 나와서 베르사이유 조약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33년 히틀러는 총통으로 당선되었고 곧 이어 그가 일으킨 2차 세계대전은 인류의 재앙이 되었다. 이를 보고 케인즈(John Keynes, 1883~1946)가 한 마디 했다. “사회를 뒤집고 싶을 때는 화폐를 평가 절하하는 것보다 더 절묘한 방법은 없다”고.

2차 세계대전 후 인플레이션 예방은 모든 경제학자 및 정부의 가장 중차대한 숙제가 되니, “불황의 경제학은 없고 오직 인플레이션 경제학만 있다”고 회자된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불황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인플레이션만 있다”는 말이 거침없이 나오는 상황이다. 인플레이션 예방 목적의 화폐 정책은 금의 가치를 따르고 엄격한 균형재정을 이뤄야 한다는 밀턴 프리드만(Milton Friedman) 등 시카고학파의 주장은 아직도 케인즈학파의 주장에 밀리고 있다. “완만한 인플레이션은 구직자에게 좋고, 정부는 하나의 슈퍼기업으로서 화폐를 공급하여 유효수요를 창출하여야 한다. 또 그렇게 풀린 돈은 다시 세금으로 걷어 들이면 된다”라는 케인즈학파의 주장은 여전히 각국 정부가 신봉하는 경제 정책의 이론적 기초이다.

올해 들어 세계 75개국의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등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고 있다고 한다. 인플레이션이라는 예상 밖의 추가 세금에 시달리는 봉급생활자나 연금 생활자 등 서민은 시카고이든 케인즈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오직 허생처럼 바다에 돈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우직하게 인플레이션을 예방하거나 조기 종식시키는 것이 정부의 주된 책무라 생각할 뿐이다. “자본주의를 붕괴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통화를 파멸 시키는 것”이라는 레닌의 말이 그럴 듯하게 들리는 상황이 와서는 절대 안된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소프트랜더스 고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 교수]

기사원문: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인플레이션과 사회 변화 - 매일경제 (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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