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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의환 고문 매경칼럼 게재] 청정한 불가사의의 세계 반도체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2-08-10 09:25:52

[진의환 고문 매경칼럼] 청정한 불가사의의 세계 반도체

문명의 시작과 동시에 수(數)와 셈법이 인류에게 필요했다. 사람의 손가락이 열 개이므로 자연스레 십진법 셈법부터 시작했다. 2,500여 년 전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놓고 각자 주장이 분분했다.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만물의 근원은 수(數)”라며 피타고라스의 정리 등 수를 이용한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사고의 시작을 제시하였다. 실생활에서 셀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수의 단위는 관념적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이 몸이 죽고 죽어 골백번 고쳐 죽어”로 시작하는 고려말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에서 ‘골’ 은 만(萬) 또는 아주 큰 수를 의미하는 순수 우리말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사라진 단어이다. 따라서 골백번은 최소 ‘백만 번’을 의미하는 관념의 수이다.

억, 조(兆), 경(京)을 초월하는 수는 아주 크다는 관념적 표상으로 쓰였다. 예를 들어 10의 44 제곱(乘) 즉, 1에 영(0)을 44개나 붙인 ‘재(載)’에 다시 1,000을 곱한 수에서 온 한 번의 찬스가 천재일우(千載一遇)이다. 확률적으로 10의 47제곱 분의 1이니 로또 당첨 확률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어렵다. 재(載)보다 더 큰 수가 ‘극(極)’이니 이는 10의 48 제곱이다. 여기 까지가 중국에서 생각할 수 있는 수의 최대치였다. 그러나 공(0)이라는 추상적 숫자를 발견한 인도와 불교는 상상을 초월하는 더 큰 숫자를 관념적으로 발전시켰다.

인도인이 신성시하는 갠지즈 강은 한자로는 항하(恒河)이다. 그 강가에 널려 있는 모래알만큼 많은 수를 의미하는 것이 ‘항하사수(恒河沙數)’이고 그 수의 크기는 ‘극(極)’의 일만 배이니 자그마치 10의 52제곱이다. 항하사수보다 더 큰 숫자를 나타내는 단어는 많다. 그 중의 하나가 ‘불가사의(不可思議)’이다. 흔히 ‘세계 7대 불가사의’라 할 때처럼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상황’을 의미하나 숫자로는 10의 64제곱이다. 그 보다 더 큰 수는 무량대수(無量大數)로 10의 68 제곱이다. 무량의 용례는 국보인 부석사 무량수전(無量壽殿)과 추사체로 유명한 해남 대흥사의 무량수각(無量壽閣) 현판에서 볼 수 있다.

지구에서 관측 가능한 우주의 질량을 계산한다면 약 ‘10의 54제곱 Kg’이라 추산된다. 따라서 무량대수는 지금도 팽창하는 우주의 크기까지 그 안에 넣을 수 있을 정도로 넉넉하니 그저 불가사의할 뿐이다. 우주의 수로서 무량은 그 왕좌를 20세기에 와서 구골(Googol)에게 물려주었으니 인간의 상상은 드리어 10의 100제곱까지 이른 것이다. 그러나 구골은 구글(Google)의 어원일 뿐이고, 실제로 숫자로써 쓸 일은 아직 없는 듯하니 별로 와 닿지는 않는다.

아주 큰 수가 관념적이었으니 아주 작은 수 또한 더욱 관념적이다. 짧은 숨 한 번의 순간이 ‘순식(瞬息)’이고 이를 숫자로 나타내면 10의 -16제곱이다. 아주 짧은 순간인 ‘찰나(刹那)’는 10의 -18제곱이고, 그 보다 더 작은 수는 ‘육덕’이다. 요즘 젊은 층에서 많이 쓰는 ‘육덕(肉德)지다’는 ‘살이 있어서 덕이 있는 듯 보기 좋다’는 뜻이지만, 수로서 육덕(六德)은 10의 -19제곱이다. 더 작은 수는 10의 -20제곱인 ‘허공(虛空)’이고, 이름이 지어진 가장 작은 수는 10의 -21제곱인 ‘청정(淸淨)’이다. 제법 빨리 달린다는 우사인 볼트(Bolt)는 ‘순식’이 에게는 못 당하며, ‘순식’이는 ‘찰나’에 진다. 가장 작은 챔피온 선발 대회라면 그리스 신화의 난장이 나노(Nano)는 ‘허공’에 지고, 조용필의 ‘허공’은 오염 없는 ‘청정’ 앞에 무릎 끓는다. 현대 전자공학에서 작은 수의 단위로 쓰이는 나노(nano)는 10억분의 1 즉 10의 -9제곱이고, 피코(pico)는 10의 -12제곱, 그리고 펨토(femto)는 10의-15 제곱이다. 작기로는 모두 ‘청정’에 못 미치니 청정보다는 육덕지게 큰 숫자들이다.

언제나 맑고 깨끗하며 오염과 먼지가 절대 허용될 수 없는 청정(淸淨) 공장에서 대한민국 경제를 지탱하는 두가지 수출 품목이 생산되고 있다. 먼지와 티끌은 물론이고 심지어 얼굴에 분 발라 화장한 사람조차 그 공장의 생산라인에는 들어 갈 수 없다. 그 하나는 자동차 생산공장에서 도장라인(Painting Line)이다. 얼굴에서 떨어져 나온 분가루가 공기 중에 있다가 분사된 페인트와 함께 차 표면에 부착되면 페인트 불량이 생기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반도체 생산라인이다. 아무리 작은 크기의 미립자 화장품이라도 그것이 반도체 내 나노 굵기의 회로에 내려 앉는다면 바윗돌 만한 장애물이 되어 수율(收率: 양품 비율)을 떨어뜨릴 것이다.

우리는 지금 4차산업혁명이 진행 중인 시대에 살고 있다. 자율주행자동차, 인공지능,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사물인터넷(IoT), 5G 그리고 메타버스 등 모든 4차 산업혁명의 모든 핵심기술은 반도체의 속도와 용량에 의존하고 있다. 반도체의 원리와 성능은 모두 숫자로 표시된다.

반도체의 원리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물질의 기본 단위가 원자임을 밝힌 돌턴(John Dalton)에서 시작한다. 원자의 구조는 원자핵과 그 주변을 회전하는 전자로 구성되었으며 그 전자들의 이동이 전류의 흐름이 된다. 반도체란 전류가 반만 흐른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물리, 화학적 조작에 따라 전류가 흐를 때가 있고 흐르지 않을 때가 있는 물질이다. 그런 물질의 대표가 실리콘이라 불리는 규소(硅素)이다. 하이테크 기업의 밀집지역 ‘실리콘 밸리’라는 이름이 규소에서 나왔고, ‘항하사수(恒河沙數)’만큼 흔하니 지각 구성 물질의 28%를 차지하는 무한 광물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반도체는 평평한 규소 기판(웨이퍼) 위에 미세하게 건축된 여러 집적회로(IC; 集積回路)의 복합체를 의미한다.

반도체에서 전류가 흐르는 상태를 숫자 1로 표시한다면, 흐르지 않는 상태는 0으로 표시할 수 있다. 0과 1의 2진법은 독일의 철학자이며 수학자인 라이프니츠(G.W. Leibniz, 1646~1716)에 의해 창시되었다. 그는 중국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다. 특히 주역(周易)은 그의 2진법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주역은 64괘(卦)로 구성되어 있고, 각 괘는 긴 막대기와 짧은 막대기인 효(爻)의 조합이다. 긴 막대기(양효)가 0이라면 짧은 막대기(음효)는 1이니 이진법이다. 반도체가 0과 1로써 인간의 정신노동을 대신하는 연산과 메모리 기능을 하듯이, 주역은 양과 음의 2진법으로 우주의 원리와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는 알고리즘의 집합체이다.

세계는 지금 반도체 전쟁 중이다. 말(馬)은 전장에서 탱크와 같은 무기였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못이 없으면 편자를 잃고, 편자가 없으면 말이 못 달리며, 말이 없으면 나라가 망한다”라는 속담까지 인용하면서 반도체를 ‘편자 박는 못’이라고 비유했다. 그는 이제 반도체는 단순한 산업용 부품이 아니라 각국의 전투력을 좌우하는 ‘최종병기’라 보는 것이고, 그 최종병기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의 영향 하에 있는 나라 또는 미국 내에서 생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목적을 위해 미국은 52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69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숫자의 보조금을 제공하려 입법 추진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우리나라 회사가 세계 최초로 3 나노미터(nm) 반도체 양산을 시작했다. 3나노는 기존의 반도체보다 회로의 굵기를 더 미세하게 한다는 의미이니 그만큼 반도체 내에 더 많은 회로를 만들 수 있어 전력 소비는 줄이고 성능은 향상시킨다. 3나노는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3에 해당하니, 순식, 찰나, 육덕, 허공 그리고 청정이 단지 상상 속의 숫자가 아니고 곧 다가올 현실의 숫자처럼 새롭게 느껴진다. 곧 반도체는 그 용량이나 제조 기술에서 그동안 관념적으로만 써온 큰 수와 작은 수를 현실로 불러오면서 경박단소(輕薄短小)의 방향으로 계속 진화해 나갈 것이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소프트랜더스 고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 교수]

기사원문: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청정한 불가사의의 세계 반도체 - 매일경제 (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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