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의 안정을 바라며…

column_108

소프트랜더스 칼럼 시리즈 #111, 오바마의 ‘American Factory’가 진정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국제 유가의 안정을 바라며

폭 50m, 길이 4km, 서울 강남에서 동서로 뻗은 10차선 간선도로는 테헤란로(路)예요. 그곳은 금융과 무역의 메카예요. 그 길은 원래 ‘삼릉로’였어요. 1977년 이란 팔레비 왕조 시절, 테헤란 시장이 서울을 방문하면서 ‘테헤란로’로 이름이 바뀌었어요. 동시에 이란에도 ‘서울로(路)’가 생겼어요. 팔레비 국왕의 이란은 대표적 친미 국가였어요. 그 영향으로 이스라엘과는 1953년에, 우리나라와는 1962년에 수교했어요. 당시 이란은 미니스커트와 청바지가 유행한, 서구적으로 개방된 나라였어요. 하지만 그런 사조는 1979년에 갑자기 유턴했어요.

왕정의 부패와 지나친 서구적 세속화에 반발해 이슬람혁명이 일어났어요. 왕정은 폐지되었어요. 정교일치(政敎一致)의 신정(神政)국가, 즉 이슬람 공화국이 호메이니에 의해 수립되었어요. 호메이니는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570~632)의 후손이라고 전해져요. 그는 혁명 직후 반미, 반 이스라엘 기조를 천명하고 그들을 ‘악마’라 부르기 시작했어요. 지금의 이란은 호메이니가 되찾은 이슬람 국가의 정체성을 유지해요. 그러면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중동 판세를 흔들고 있어요. 요동치는 국제유가, 아랍에서의 핵무기와 무기 경쟁, 중국과 러시아의 중동 접근이 그 예예요.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 아랍권의 재편성 움직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무력충돌도 마찬가지예요. 이는 이란이 야기하거나 은밀히 주도해 벌어진 상황이에요. 얽히고설킨 중동 문제를 파악하려면 그곳의 복잡한 역사를 알아야 해요. 특히 이슬람 국가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이해해야 해요.

무함마드는 610년,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신의 첫 계시를 받았어요. 가브리엘은 무함마드에게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읊으라”고 주문했어요. 이는 ‘신의 이름으로 신의 뜻을 전파하라’는 의미였어요. 그들은 알라신이 아주 특별한 사람만 예언자로 선택해 ‘올바르게 사는 법’을 알려 준다고 믿어요. 그래서 학자들은 예언자가 나타나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가 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계시종교’라 분류해요. 무함마드는 아라비아반도 일대의 다신교 사상을 배척했어요. 그리고 아랍민족을 유일신 종교인 ‘이슬람’으로 빠르게 통합했어요. ‘이슬람’은 ‘신에게 복종한다’는 의미예요. 무함마드는 ‘움마’라는 신앙 및 생활공동체를 기반으로 이슬람국가를 세웠어요. 그래서 국가의 주권은 신에게 있어요. 신의 계시를 기록한 꾸란(Quran)은 헌법과 마찬가지예요.

632년 무함마드가 고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요. 후계자, 즉 칼리파(Khalifa) 선출을 두고 의견이 갈렸어요. 칼리파는 종교와 정치를 모두 아우르는 지도자예요. 무함마드의 혈족이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시아파’예요. 혈족이 아니더라도 통치 능력과 신앙이 뛰어난 사람이 투표로 선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수니파’예요. 그로부터 이슬람 사회는 두 종파로 분열되었어요. 현재 이슬람 인구의 90% 이상은 수니파예요. 국가로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파키스탄, 튀르키에 등 대부분의 아랍 국가가 수니파예요. 시아파 국가는 이슬람 혁명으로 수립된 이란과 이라크, 아제르바이잔 등이에요. 무함마드 사후 1대에서 4대 칼리파는 모두 수니파에서 나왔어요. 이들은 활발한 정복과 포교로 국가인 동시에 이슬람공동체를 굳건히 다졌어요.

초기 칼리파들의 리더십 아래 이슬람제국은 빠르게 성장했어요. 평등주의에 입각해 능력에 따라 사람을 발탁했기 때문이에요. 이때가 이슬람의 황금기였어요. 그 뒤 이슬람제국이 지리적으로 방대해지자 지방왕조의 군주인 술탄이 출현했어요. 술탄은 정치와 종교를 모두 쥔 지도자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점차 칼리파를 능가하는 권력을 갖게 되었고, 칼리파는 종교지도자로만 의미가 줄어들었어요.

호메이니가 혁명에 성공한 1979년에 구 소련이 이슬람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어요. 이에 중동지역의 무장 무슬림들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가 구 소련에 게릴라전으로 대항했어요. 그들의 전통적 생각은 이래요. 수니파와 시아파를 가리지 않고 같은 이슬람국가가 이교도에게 침략당하는 것을 앉아서 볼 수 없다는 거예요. 미국이 이 점을 가끔 잊어버려서 문제가 자꾸 반복돼요. 오사마 빈 라덴도 당시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활동한 무장 게릴라 중 하나였어요.

다음 해 1980년에는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이 발발했어요. 명분은 국경 분쟁이었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시아파의 혁명으로 정권전복의 위험을 느낀 사담 후세인이 일으킨 반혁명 전쟁이었어요. 이때 미국은 이라크를 지원했어요. 어제의 친구 이란은 미국의 적이 되었어요. 오늘의 친구 후세인도 후일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해 제거했어요. 1984년부터 미국은 이란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어요. 그리고 40년 간 경제적으로 제재(Sanctions) 중이에요. 1990 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어요. 이에 왕정 붕괴 위협을 느낀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에 파병을 요청했어요. 미군과 연합군 약 80만명이 개입해 걸프전을 끝냈어요.

그러나 이슬람이 아닌 이교도 국가의 군사 개입은 아랍 이슬람권의 반발심에 다시 불을 당겼어요. 구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후 ‘지하드’(칼을 잡는 것이라는 뜻)가 더욱 활발해졌어요. 이는 결국 2001년의 911테러로 이어졌어요. 뒤이은 미국의 아프간·이라크 침공과 오사마 빈 라덴·후세인의 제거도 있어요. 이슬람 공동체의 입장에서 보면 이교도가 이슬람의 자존심을 건드린 거예요. 아랍 이슬람 국가들은 13세기 이민족 몽골의 침략을 ‘그들이 알라 신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당한 벌’이라고 자책하고 있어요. 그 뒤 이교도의 침략에는 단합해 대항하는 이슬람의 정체성이 형성되었어요. 따라서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팔레스타인 공격은 위험한 뇌관이 될 수도 있어요. 이슬람 공동체의 자존심을 다시 건드리기 때문이에요.

세계 원유 매장량의 57%는 중동과 북 아프리카 등 이슬람권에 있어요. 이란이 통제하는 호르무즈 해협은 원유 수송량의 90%가 지나는 길목이에요. 이란은 세계 원유 매장량 4위의 산유국이에요. 원유수출이 전체 수출의 60%를 차지해서 경제는 원유에 의존해요. 지난 40년 간 지속된 미국의 제재 속에서 이란은 중국과 러시아를 끌어들여 빠져나가려 해요. 이란산 원유는 타국산으로 둔갑해 저렴하게 중국으로 우회 수출돼요. 이란은 지정학적으로 절묘한 위치를 활용해 러시아와 인도도 자기편으로 만들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시아파의 종주국으로서 중국의 중재로 수니파 맹주 사우디와 관계를 개선했어요. 미국과 사우디의 소원한 틈새를 더욱 악화시키는 전략이에요. 또 팔레비 왕조 때 미국에서 연구용으로 제공받은 원자로를 이용하고 발전시켜 우라늄을 농축해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이미 핵 보유국이에요.

현재 이스라엘과 싸우는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는 태생은 수니파이지만 시아파 이란의 지원 아래 버티고 있어요. 이란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등을 지원해요. 중동의 불안을 지속적으로 조장하고 있어요. 그 속셈은 국제 유가를 올려 반사이익을 얻자는 것에 있어요.

지금 중동의 정치적 주도권은 이란이 쥐고 흔들고 있어요. 미국과 서방,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이해하고 풀어 줘야 해요. 이란은 이스라엘과 전면전(全面戰)을 치를 의향이 없어요. 그간의 행동에서 충분히 나타났어요. 자국 땅에서의 전쟁은 피해요. 하마스 등을 앞세운 대리전으로 미국과 서방에 새로운 해법 제시를 재촉하고 있어요. 국제관계에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어요. 우리나라의 중동 산 석유의존도는 70%예요. 우리 경제에 국제유가의 안정은 필수예요. 이슬람에 대한 기존의 선입관에서 벗어나 유연한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때예요. 그러려면 이슬람의 자존심과 그들의 정치, 종교적 정체성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해요. 지금 미국 대학생들의 시위는 그런 유연한 전략적 사고를 요구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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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랜더스 칼럼 시리즈 #111, 오바마의 ‘American Factory’가 진정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국제 유가의 안정을 바라며

폭 50m, 길이 4km, 서울 강남에서 동서로 뻗은 10차선 간선도로는 테헤란로(路)예요. 그곳은 금융과 무역의 메카예요. 그 길은 원래 ‘삼릉로’였어요. 1977년 이란 팔레비 왕조 시절, 테헤란 시장이 서울을 방문하면서 ‘테헤란로’로 이름이 바뀌었어요. 동시에 이란에도 ‘서울로(路)’가 생겼어요. 팔레비 국왕의 이란은 대표적 친미 국가였어요. 그 영향으로 이스라엘과는 1953년에, 우리나라와는 1962년에 수교했어요. 당시 이란은 미니스커트와 청바지가 유행한, 서구적으로 개방된 나라였어요. 하지만 그런 사조는 1979년에 갑자기 유턴했어요.

왕정의 부패와 지나친 서구적 세속화에 반발해 이슬람혁명이 일어났어요. 왕정은 폐지되었어요. 정교일치(政敎一致)의 신정(神政)국가, 즉 이슬람 공화국이 호메이니에 의해 수립되었어요. 호메이니는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570~632)의 후손이라고 전해져요. 그는 혁명 직후 반미, 반 이스라엘 기조를 천명하고 그들을 ‘악마’라 부르기 시작했어요. 지금의 이란은 호메이니가 되찾은 이슬람 국가의 정체성을 유지해요. 그러면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중동 판세를 흔들고 있어요. 요동치는 국제유가, 아랍에서의 핵무기와 무기 경쟁, 중국과 러시아의 중동 접근이 그 예예요.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 아랍권의 재편성 움직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무력충돌도 마찬가지예요. 이는 이란이 야기하거나 은밀히 주도해 벌어진 상황이에요. 얽히고설킨 중동 문제를 파악하려면 그곳의 복잡한 역사를 알아야 해요. 특히 이슬람 국가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이해해야 해요.

무함마드는 610년,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신의 첫 계시를 받았어요. 가브리엘은 무함마드에게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읊으라”고 주문했어요. 이는 ‘신의 이름으로 신의 뜻을 전파하라’는 의미였어요. 그들은 알라신이 아주 특별한 사람만 예언자로 선택해 ‘올바르게 사는 법’을 알려 준다고 믿어요. 그래서 학자들은 예언자가 나타나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가 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계시종교’라 분류해요. 무함마드는 아라비아반도 일대의 다신교 사상을 배척했어요. 그리고 아랍민족을 유일신 종교인 ‘이슬람’으로 빠르게 통합했어요. ‘이슬람’은 ‘신에게 복종한다’는 의미예요. 무함마드는 ‘움마’라는 신앙 및 생활공동체를 기반으로 이슬람국가를 세웠어요. 그래서 국가의 주권은 신에게 있어요. 신의 계시를 기록한 꾸란(Quran)은 헌법과 마찬가지예요.

632년 무함마드가 고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요. 후계자, 즉 칼리파(Khalifa) 선출을 두고 의견이 갈렸어요. 칼리파는 종교와 정치를 모두 아우르는 지도자예요. 무함마드의 혈족이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시아파’예요. 혈족이 아니더라도 통치 능력과 신앙이 뛰어난 사람이 투표로 선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수니파’예요. 그로부터 이슬람 사회는 두 종파로 분열되었어요. 현재 이슬람 인구의 90% 이상은 수니파예요. 국가로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파키스탄, 튀르키에 등 대부분의 아랍 국가가 수니파예요. 시아파 국가는 이슬람 혁명으로 수립된 이란과 이라크, 아제르바이잔 등이에요. 무함마드 사후 1대에서 4대 칼리파는 모두 수니파에서 나왔어요. 이들은 활발한 정복과 포교로 국가인 동시에 이슬람공동체를 굳건히 다졌어요.

초기 칼리파들의 리더십 아래 이슬람제국은 빠르게 성장했어요. 평등주의에 입각해 능력에 따라 사람을 발탁했기 때문이에요. 이때가 이슬람의 황금기였어요. 그 뒤 이슬람제국이 지리적으로 방대해지자 지방왕조의 군주인 술탄이 출현했어요. 술탄은 정치와 종교를 모두 쥔 지도자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점차 칼리파를 능가하는 권력을 갖게 되었고, 칼리파는 종교지도자로만 의미가 줄어들었어요.

호메이니가 혁명에 성공한 1979년에 구 소련이 이슬람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어요. 이에 중동지역의 무장 무슬림들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가 구 소련에 게릴라전으로 대항했어요. 그들의 전통적 생각은 이래요. 수니파와 시아파를 가리지 않고 같은 이슬람국가가 이교도에게 침략당하는 것을 앉아서 볼 수 없다는 거예요. 미국이 이 점을 가끔 잊어버려서 문제가 자꾸 반복돼요. 오사마 빈 라덴도 당시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활동한 무장 게릴라 중 하나였어요.

다음 해 1980년에는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이 발발했어요. 명분은 국경 분쟁이었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시아파의 혁명으로 정권전복의 위험을 느낀 사담 후세인이 일으킨 반혁명 전쟁이었어요. 이때 미국은 이라크를 지원했어요. 어제의 친구 이란은 미국의 적이 되었어요. 오늘의 친구 후세인도 후일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해 제거했어요. 1984년부터 미국은 이란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어요. 그리고 40년 간 경제적으로 제재(Sanctions) 중이에요. 1990 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어요. 이에 왕정 붕괴 위협을 느낀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에 파병을 요청했어요. 미군과 연합군 약 80만명이 개입해 걸프전을 끝냈어요.

그러나 이슬람이 아닌 이교도 국가의 군사 개입은 아랍 이슬람권의 반발심에 다시 불을 당겼어요. 구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후 ‘지하드’(칼을 잡는 것이라는 뜻)가 더욱 활발해졌어요. 이는 결국 2001년의 911테러로 이어졌어요. 뒤이은 미국의 아프간·이라크 침공과 오사마 빈 라덴·후세인의 제거도 있어요. 이슬람 공동체의 입장에서 보면 이교도가 이슬람의 자존심을 건드린 거예요. 아랍 이슬람 국가들은 13세기 이민족 몽골의 침략을 ‘그들이 알라 신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당한 벌’이라고 자책하고 있어요. 그 뒤 이교도의 침략에는 단합해 대항하는 이슬람의 정체성이 형성되었어요. 따라서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팔레스타인 공격은 위험한 뇌관이 될 수도 있어요. 이슬람 공동체의 자존심을 다시 건드리기 때문이에요.

세계 원유 매장량의 57%는 중동과 북 아프리카 등 이슬람권에 있어요. 이란이 통제하는 호르무즈 해협은 원유 수송량의 90%가 지나는 길목이에요. 이란은 세계 원유 매장량 4위의 산유국이에요. 원유수출이 전체 수출의 60%를 차지해서 경제는 원유에 의존해요. 지난 40년 간 지속된 미국의 제재 속에서 이란은 중국과 러시아를 끌어들여 빠져나가려 해요. 이란산 원유는 타국산으로 둔갑해 저렴하게 중국으로 우회 수출돼요. 이란은 지정학적으로 절묘한 위치를 활용해 러시아와 인도도 자기편으로 만들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시아파의 종주국으로서 중국의 중재로 수니파 맹주 사우디와 관계를 개선했어요. 미국과 사우디의 소원한 틈새를 더욱 악화시키는 전략이에요. 또 팔레비 왕조 때 미국에서 연구용으로 제공받은 원자로를 이용하고 발전시켜 우라늄을 농축해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이미 핵 보유국이에요.

현재 이스라엘과 싸우는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는 태생은 수니파이지만 시아파 이란의 지원 아래 버티고 있어요. 이란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등을 지원해요. 중동의 불안을 지속적으로 조장하고 있어요. 그 속셈은 국제 유가를 올려 반사이익을 얻자는 것에 있어요.

지금 중동의 정치적 주도권은 이란이 쥐고 흔들고 있어요. 미국과 서방,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이해하고 풀어 줘야 해요. 이란은 이스라엘과 전면전(全面戰)을 치를 의향이 없어요. 그간의 행동에서 충분히 나타났어요. 자국 땅에서의 전쟁은 피해요. 하마스 등을 앞세운 대리전으로 미국과 서방에 새로운 해법 제시를 재촉하고 있어요. 국제관계에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어요. 우리나라의 중동 산 석유의존도는 70%예요. 우리 경제에 국제유가의 안정은 필수예요. 이슬람에 대한 기존의 선입관에서 벗어나 유연한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때예요. 그러려면 이슬람의 자존심과 그들의 정치, 종교적 정체성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해요. 지금 미국 대학생들의 시위는 그런 유연한 전략적 사고를 요구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