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의환 고문 매경칼럼 게재] 융합과 집단 지성

[진의환 고문 매경 칼럼 게재]

‘융합(Convergence)’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요소이다. 아무리 첨단 제품이라도 기술만으로는 히트 상품이 될 수 없고, 경제적 효용이 확보된 가운데 디자인 등 예술적 감성과 인문학적 고려가 창의적으로 융합되어야 한다. 학문도 마찬가지이다. 자연과학, 사회과학, 공학, 예술 그리고 인문학 등이 서로 융합하고자 교차점(Intersection)을 갈구하며 모색하고 있다.

역사학 또한 같은 트랜드이나 약간 빠르게 진행되었다. 어느 분야보다도 더 포괄적인 속성상, 천체물리학, 자연과학, 종교학, 정치경제학과 인문학 등을 융합한 역사인식인 빅 히스토리(Big History)가 ‘학문의 새로운 모델’로서 빌 게이츠의 후원아래 급부상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 그리고 유발 하라리의 <호모 사피엔스> 같은 빅 히스토리 작품들이 이미 전 세계적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기존의 문명사 중심의 역사에서 탈피하여 135억 년 전 빅뱅부터 시작한 우주와 지구 그리고 35억년 전 출현한 생명체와 인간 등을 아우르는 거시적이고 융합적인 시각, 동시에 정치, 종교, 산업 등 문명사에 대한 신선한 해석이 빅 히스토리(Big History)의 매력이다. 그 저자들의 융합적 통찰력에 빌 게이츠 또한 매료되었을 것이다.

융합적 통찰의 한 예로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에서 인류가 약 7만년 전의 인지혁명 이후 양적으로 거대해진 집단에서, 구성원 개개인의 협력을 도출해 내는데 쓴 효과적인 도구가 ‘신화’라고 설명한다. 즉, 인류는 실체가 없는 가상의 허구인 ‘공통의 신화’를 받아들이고 믿음으로써 국가 및 공동체에 대한 충성심을 발휘하고, 더 나아가 문명공동체도 그 기반 위에 존립한다고 말했다. 왜 위정자들은 초등학생 시절의 우리 베이비 붐 세대에게 그토록 단군신화를 강조하고 배달의 민족이라는 민족적 자긍심을 주입했는지 이해가 간다.

그리스 로마신화의 인문학적 위치를 생각하면 또한 수긍이 간다. 그것은 수 천년에 걸쳐 인간 삶의 보편적 진실이 융합된 상상이지만, 서구인들이 받아들인 ‘공통의 허구’이므로 유럽문화의 뿌리로 확고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신화가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종교, 과학, 사회, 문학, 심리학 등을 통합하여 인간의 근원적 본질을 이해시키려는 교육적 목적과 개인 및 집단의 문제해결을 위한 원초적 지혜로써 활용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4차 산업혁명과 융합의 시대에서 신화는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의 대표적 산물이라고 새롭게 인식되고 평가되어야 한다.

집단지성이라는 용어는 1800년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지금처럼 사이버 공간에서 정보의 교환과 상호작용이라는 의미로 대중화 된 것은 1994년 프랑스의 피에르 레비(Pierre Levy, 1956~)가 <집단지성>이라는 책을 낸 이후이다. 그는 사이버 공간에서 유토피아적 지식공동체를 구축하고자 노력한 학자이다.

우리가 잘 아는 인터넷 상 집단지성의 전형적인 예는 누구나 저자로 참여 할 수 있는 백과사전 ‘위키피디아(Wikipedia)’이다. 하와이 말로 ‘빠르다’라는 의미의 위키(WIKI)는 ‘내가 아는 바(What I Know is ~)’의 머리 글자이기도 하다. 2001년 개설된 위키피디아에는 하루평균 5억명이 방문하고 지금까지 거의 천 만명이 참여하여 ‘내가 아는 바’를 꾸준히 업로드하고 있다.

여러가지 해석과 설명이 있지만, 집단지성은 “상호 작용하는 개체의 집합인 집단이 발휘하는 문제 해결 능력”이라고 정의된다. 피에르 레비는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은 없지만, 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고 다른 사람도 내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 남을 통해 내 지식을 더욱 풍부히 할 수 있다. 그래서 완전한 지식은 인류 전체에 어디에나 퍼져 있다”라는 아주 긍정적인 기본명제를 가지고 집단지성 활성화 프로젝트를 추진하였다.

놀랍게도 피에르 레비의 이런 명제는 공자(孔子)와 말씀과 상통한다. 공자는 “내가 날 때부터 저절로 다 아는 것이 아니라, 옛 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배웠기에 알게 되었을 뿐이다(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라고 말했고, 같은 맥락으로 논어(論語)에서는 “세 사람이 가면, 거기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三人行 必有我師)”라 했다. 이는 현대적 해석으로 보면 집단지성은 어디에나 분포되어 있고, 지속적으로 이용 가능한 것이며, 실제로 동원가능한 보편적인 지혜라는 점을 명확하게 지적한 것이다.

그렇다면 집단지성은 항상 옳은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는 않다. “나보다 우리가 항상 똑똑하다”라는 명제는 그 ‘우리’가 어떤 수준의 집단인가에 따라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위키피디아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도 오류가 많은것은 사실이다. 다수의 판단, 다수의 견해라고 해서 항상 최선의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집단지성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의 연구가 있다. 그 핵심 사항을 간단히 요약한다면, 집단의 구성원들이 각자 다양한 전문성과 경험을 가진 이질적이어야 하고, 각자 독립적인 의견과 견해를 개진 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들이 합리적이고 협력적으로 취합되는 집단화가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조건이 하나라도 결여되면 ‘집단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집단지성이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생산적으로 작용하려면, 동질성이 아닌 이질성의 존중, 획일성이 아닌 독립성있는 의견이 자유로이 분출될 수 있고 선입견없이 취합되는 기업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 생산적인 집단행동이 나온다.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는 최적의 정치 시스템은 역시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는 집단지성이 향상시켜야 하는 긴급한 시대적 대상이다. 집단지성이 없는 정치는 독재나 우민(愚民)정치로 흐를 위험성이 있다.

브라질에 ‘혼자 꾸는 꿈은 한낱 꿈이지만, 여럿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속담이 있다. 국가이든 기업이든 그 구성원 모두의 꿈이 반영된 집단지성은 21세기 융합의 시대를 이끌어가는 견인차이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소프트랜더스 고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 교수]

기사원문: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융합과 집단 지성 - 매일경제 (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