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의환 고문 매경칼럼 게재] 4차 산업혁명은 과연 혁명인가?
[진의환 고문 매경 칼럼 게재]
의지와 상관없이 매스컴을 통해 자주 듣게 되니 그 뜻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화천대유(火天大有)였다. 사서삼경(四書三經) 중 역경(易經)이라는 주역(周易)에 나오는 64 괘(卦) 중 하나이다. 64괘를 훑어보니 관심 끄는 괘가 하나 더 있다. 택화혁(澤火革)의 혁괘(革卦)이다. ‘가죽 혁’ 자(字) 괘가 아니라 ‘바꿀 혁’ 자 괘이다. 짐승 가죽의 털은 계절에 따라 바뀐다는 의미에서 혁(革)자가 풀이된다. 화천대유가 64괘 중 최고의 괘라면, 택화혁은 가장 강력한 변화의 괘이다. 위에는 물, 아래에는 활활 타는 불이 있으니 사생결단의 중대한 변화가 곧 나온다는 의미이다. 요즘 기업가, 경영자 그리고 공직자까지도 가장 많이 쓰고 듣는 단어가 이 혁 괘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바로 혁신(革新)과 혁명(革命)이다.
혁신(Innovation)은 ‘세발(三足) 솥다리처럼 균형 잡아 새것을 세우고 오래된 것은 바꾼다’는 정신혁고(鼎新革故)에서 나온 말이다. 혁신기업, 혁신도시, 기술혁신, 디지털혁신, 경영혁신, 의식혁신, 파괴적 혁신 등 온갖 혁신 때문에 가죽에서 뼈속까지 환골탈태(換骨奪胎)하지 않으면 살아 남지 못할 듯한 위기감이 느껴진다. 거기에다 운명과 천명(天命)을 바꾼다는 혁명(Revolution)은 어떠 한가? 역성혁명, 인지혁명, 녹색혁명, 가격혁명, 문화혁명, 세제혁명, 시민혁명,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 대혁명, 반혁명, 디지털혁명 그리고 산업혁명까지 우리 모두는 체 게바라 같은 혁명투사가 된 것처럼 비장해진다.
1770년대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촉발된 1차 산업혁명은 간밤의 혁명군처럼 인류의 삶에서 모든 것을 급격하게 바꿨 놓았기 때문에 혁명으로 인정하는 데 이의가 없다. 그로부터 약 100년 후인 1870년 이후, 전기를 이용한 대량생산 방식으로 열린 2차 산업혁명은 진정한 의미의 혁명은 아니고 1차 산업혁명의 질적 고도화라는 주장도 있지만, 중론은 숫자를 올려 2차 산업혁명으로 간주한다. 다시 100년후 1970년부터 보급된 컴퓨터와 1990년대의 인터넷 확산으로 유발된 3차 산업혁명도 혁명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2016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명명(命名)된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는 진성 혁명인지 여부에 대해 담론(談論)이 많다.
1,2,3차 산업혁명은 각 100년씩의 세월에 걸쳐 진행된 것이고 역사학자들이 그 전후 변화의 중대성과 파격성에 근거하여 혁명이라고 평가한 것이지만, “3차 산업혁명이 시작된 지 겨우 몇 십년 만에 다시 혁명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 과연 있는가”라는 것이 회의적 담론의 핵심이다. 로봇,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빅데이터, 메타버스, 블록체인 그리고 클라우드 컴퓨팅 등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초연결, 초지능 그리고 초융합의 시대를 실현시킬 혁신기술이라 하지만 그것들은 이미 3차 산업혁명 중에 발아한 것이니 그의 연장선 내지 고도화라고 봐야 한다는 논지이다. 또 그 진화중인 기술들이 인류의 복지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성공한 혁명이 될지 실패한 쿠데타가 될지 어찌 알고 성급하게 혁명으로 대접하냐는 질책도 암묵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진화 내지 진행 중이지만 그 결과가 불을 보듯 확실한 급진적 실체라면 또 21세기부터 시작된 것들이 20년이 지난 지금 그 결과가 이미 나타나 대중의 의식 속에 혁명적이라고 인식되었다면 가히 혁명이라 부를 수 있다는 것이 지배적 담론이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해 회의적 담론이 나오는 부정적 정서에는 그것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혁명이 진행 중일 때 대중은 불안하다. 과연 그 혁명의 결과가 안정적으로 삶의 질을 개선하여 대중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선한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3차 산업혁명의 결과 만연된 디지털 치매, 허위 정보 전염병인 인포데믹스(Infodemics), 이멜이나 SNS로 특정인을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사이버 불링(Cyber Bulling), 사생활 침해 그리고 해킹 등으로 이미 그 부작용을 겪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불안은 4차 산업혁명으로 ‘안드로니즘(Andronism)’마저도 빼앗길 것이라는 위기감이다. 안드로니즘이란 미래학자 게르트 레온하르트(Gerd Leonhard)가 그의 저서에서 말한 것으로, “기계의 알고리즘으로 쉽게 규정하거나 만들 수 없는 창의성, 책임성, 연민, 공감능력 등 인간만이 가진 특성으로 꼭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에 의해 안드로니즘 즉 인간성마저 위협 당하는 상황은 꼭 피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이미 형성되어 있지만, 그런 기술의 개발은 암암리에 은밀히 진행 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나 당장 더 급한 목전의 불안은 4차 산업혁명의 결과 인간의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라는 위기론이다.
일자리 감소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가 있다. 앞으로 저 출산, 고령화로 노동 인구가 감소할 것이고, 이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와 상쇄될 것이니 문제 안된다는 낙관론이다. 물론 그럴 가능성도 있으나, 자연적인 노동 공급의 감소보다도 수요의 감소 속도가 더 빠르다면 불안은 여전하다. 이 일자리 위기 이슈에 대해 이민화(1953~2019) 전 KAIST 교수의 연구(아산재단 연구총서)는 논리적이고 낙관적이며 또 그렇게 가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인류 역사상 산업혁명으로 인해 일자리 총량이 감소한 사례는 없다고 확언한다. 물론 기술혁신으로 어떤 일자리는 사라질 수 있지만, 인간의 욕망이 확대되는 한 새로운 일자리가 계속 창출되어 일자리 수는 줄지 않는다는 것이 요점이다. 결론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는 대부분 기존 산업이 아니라 새로이 등장하는 산업에서 만들어 진다는 낙관적 통찰이다. 근거로 매슬로우(Abraham Maslow)의 ‘인간욕구 5단계(Hierarchy of Needs)’를 인용하였다.
인간의 욕구는 피라미드 단계를 이루는데, 가장 저변의 생리적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면 차 상위 욕구인 안전(Safety) 욕구로, 그 다음에 애정과 연결의 사회적 욕구로, 또 그 위의 존경과 관심 받는 자기표현 욕구로 그리고 최상위로 자아실현의 욕구로 상향 이동 한다는 것이 매슬로우의 이론이다. 과거의 1,2,3차 산업혁명은 인간의 5단계 욕구 중 하위 3단계인 생리, 안전 그리고 연결의 사회적 욕구를 어느 정도 충족 시킨 것이고, 이제 4차 산업혁명은 자기표현과 자아실현이라는 상위 4, 5단계 욕구의 실현이므로, 그에 상응하는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본다. 유튜브가 나온 것이 2010년대인데, 10년 후 유튜버가 청소년들이 가장 선망하는 새로운 직업으로 부상한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이와 비슷한 논지는 많다. 로봇, 자율주행차, 사물 인터넷 그리고 인공지능 등의 핵심기술을 인간성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한 경제는 활력을 유지하고 사람의 일자리는 계속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혁신과 혁명의 혁괘(革卦)는 인간에게 이롭게 바꾸자는 것이지 인간성과 일자리마저 없애자는 혁파(革罷)는 아니다. 4차 산업혁명에 좀 더 자신감과 신뢰를 가지고 새로운 변화에 능동적인 주역이 되겠다는 마인드셋(Mind Set)이 필요한 시기이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소프트랜더스 고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 교수]
기사원문: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4차 산업혁명은 과연 혁명인가? - 매일경제 (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