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의환 고문 매경칼럼 게재] 포스트휴머니즘이 온다

[진의환 고문 매경 칼럼 게재]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 분의 책을 읽어야 한다’라는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는 학창시절 나에게 심적 부담으로 작용했다. 매달 두세 권씩 책을 사 읽었지만 언제 다섯 수레를 채울지 조바심이 났었다. 구텐베르그(Johannes Gutenberg, 1397~1468)가 15세기에 금속활자 인쇄술을 보급한지 150여년 후 영국에는 1년에 출판되는 책이 약 100권이었다고 한다. 그 때 셰익스피어는 당시 출판되는 모든 책을 읽으면서 ‘로미오와 줄리엣’ 등 명저를 창작했을 것으로 추측되니 그는 다섯 수레 분의 책을 읽었을 것이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작곡하는 창작 활동은 더 이상 인간만의 고유 영역은 아니다. 인공지능이 작품활동도 하고 스스로 기사도 쓰며 허위정보도 그럴듯하게 만들어 유포한다. 초연결, 초지능 그리고 각 산업 및 학문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융합으로 인해 집단지성은 활성화되고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들은 모든 변화의 속도를 광속으로 끌어 올리고 있다. 그에 따른 출판물과 정보의 홍수는 관련된 지식의 유효기간 및 가치를 빠르게 단축시키고 있다.

지식의 절반이 쓸모없는 것으로 무력해지는 기간인 ‘지식 반감기( Half-Life of Knowledge)’라는 개념이 등장하였다. 지식에도 방사능 물질처럼 반감기가 있고, 새로운 정보와 출판물이 폭증하는 만큼 지식의 반감기도 점점 짧아지고 있다. 하바드 대학의 새뮤얼 아브스만(Samuel Arbesman)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각 분야의 반감기는 물리학 13.07년, 경제학 9.38년, 수학 9.17년, 종교학 8.76년, 심리학 7.15년 그리고 역사학은 7.13년이다. 이제는 무엇을 많이 안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를 따라잡기 위해 평생 배우며 내재화 하는 자세와 역량이 필요하다. 에베레스트 산의 높이가 매년 달라지듯이 지식도 가변적이니 비록 지금은 사실이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사실이 아닐 수 있다. 그래서 재판, 학문 그리고 언론에서 채택되지 않은 소수의견도 미래를 위해서는 중요하다.

그러나 ‘반감기’ 없이 인류가 호모사피엔스로 남아있는 한 유지해야 할 가치가 있다. 휴머니즘에 근거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동서고금의 공통적 윤리원칙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임마누엘 칸트의 “네 의지의 준칙이 동시에 보편적 법칙의 원리가 되도록 행동하라”라는 250년 전 순수실천이성원칙은 2500년전 공자의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 마음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해도 도리나 법규에 어긋남이 없다)와 상통하는 반감기 없는 윤리원칙이다.

인간은 욕망의 생명체이지만 사회에서 자신의 욕망대로만 살 수는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욕망과 본성을 제어하는 성품인 이성(理性)을 가졌다. 인간은 이성에 근거하여 사회 구성원과의 상호작용 및 공존을 위한 윤리규범을 만들고, 거기에 스스로 통제되는 자율성을 가진 점이 여타 생명체와 구별되는 본질적 특성이다.

지금까지 인간만 가지고 있던 자율성을 이제는 인공지능과 로봇도 가지게 되었다. 인공지능이란 컴퓨터를 수단으로 하여 인간의 지능, 판단능력 그리고 의사결정 능력까지 부여받은 기계이다. 인공지능 등 기술의 발전 덕분에 자연인 인간보다도 신체적, 육체적으로 더 개선된 사이보그와 트랜스휴먼(Transhuman)이 출현하고 있다. 현 인류가 생물학적 진화로 지금의 능력을 가졌다면, 트랜스휴먼은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개조된 신인류 중 하나이다. 이렇게 자연인 인류보다 더 월등한 능력 때문에 더 이상 호모사피엔스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모호해진 신인류를 학문적으로 통칭하여 포스트휴먼(Posthuman)이라 한다.

그 또한 자율성을 가졌기에 이제 현생인류는 좋든 싫든 간에 인공지능과 포스트휴먼까지 포함하여 상호작용하고 공존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지금까지 인간만의 휴머니즘 윤리원칙에서 더 확장하여 인공지능 및 포스트휴먼까지 고려한 공존의 윤리 패러다임을 새로 짜야 한다. 기존의 휴머니즘을 기반으로 한 사회발전은 이제 끝났다는 전제하에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휴머니즘을 모색하는 것이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이다. 그 첫 단계로 자율성을 가진 인공지능에게 어떤 윤리원칙을 심어 놓고 어떤 권리와 의무를 부여해야 할 지가 지금의 이슈이다.

인공지능은 자율성뿐만 아니라 인간보다 월등한 계산력과 데이터에 기반한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데이터에 인간이 지닌 편견이나 비합리적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면 그를 학습한 인공지능도 윤리원칙에 어긋나는 판단을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시점에서 검거된 흑인 범죄자가 백인보다 더 많다는 것을 학습한 인공지능이 “흑인이 백인보다 더 범죄성향이 높다”고 단정한다면 인종차별의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인권 이슈로 팽팽한 찬반 양론이 대립하는 또 하나의 예는 LAWS (Lethal Autonomous Weapons System)라는 전투용 킬러로봇의 개발이다. 킬러로봇은 인간의 개입없이 알고리즘에 따라 전투하는 인공지능으로 전투 중에는 무조건 적군을 사살한다. 인간 병사는 상황에 따라 포로로 잡기도 하겠지만…

이런 이슈를 사전규율하기 위한 해법은 무엇인가? 현인류가 인공지능과 포스트휴먼을 통제할 수 있는 한, 휴머니즘 즉 인간 존엄성에 기초한 반감기 없는 전통윤리가 아직까지는 유효한 답이다. 인공지능 개발에서 인간존중의 원칙을 알고리즘에 철저히 이식해야 하므로 이는 곧 인공지능을 다루는 사람들의 윤리가 된다. 인간 존엄성을 훼손 또는 그럴 우려가 있거나 공공복지를 해하는 과학 기술의 적용은 규범으로 통제되어야 하고, 그 규범의 준수와 감독을 위해 국제기구의 창설까지 제안되고 있다. 또 휴머니즘 기반 인문학과 윤리교육의 강화가 요구된다

실제로 여러 나라와 국제기구 그리고 거대 플랫폼 기업들은 인간의 존엄성 확보라는 대원칙 아래 인공지능 윤리원칙을 작성하여 선포했다. 2015년 유럽연합(EU)의 ‘신뢰할 수 있는 인공지능 윤리 가이드라인’을 필두로 하여, 2017년 아실로마(Asilomar) 인공지능 원칙, 유네스코, OECD, 구글 그리고 우리나라의 카카오까지 인공지능 윤리원칙을 선언하였다. 카카오의 경우 “우리 사회 윤리 안에서”라는 알기 쉬운 간단한 표현으로 알고리즘과 인공지능 개발의 기본원칙을 발표했다.

그러나 휴머니즘 기반 인간제일의 원칙은 어디까지나 인류가 인공지능과 포스트휴먼을 통제할 수 있을 때 유효하다. 만일 인공지능이 스스로 학습과 진화를 거듭하여 인류를 추월하는 존재가 되는 특이점(Singularity)을 넘어서고, 포스트휴먼의 영향력이 커진다면 기존의 휴머니즘적 윤리와 기본 사회질서는 무너질 수 있다. 인류는 조화로운 공생을 위해 새로운 형태의 관계 설정 즉 포스트휴머니즘적 사고의 수용이 필요하다. 그 때는 인간만이 이 세상의 중심에 있고 만물을 지배한다는 생각부터 버리고, 인공지능에게도 의무뿐만 아니라 저작권 등 권리도 주어야 하니 기존의 가치, 윤리 그리고 법질서까지 유연하게 수정해야 한다.

씁쓸하지만 포스트휴머니즘은 과학과 기술이 주도하는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 남아야 하는 현생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담론이므로 소수의견이지만, 무시되어서는 안되고 발전적 논의를 계속해야 할 우리의 과제이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소프트랜더스 고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 교수]

기사원문: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포스트휴머니즘이 온다 - 매일경제 (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