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의환 고문 매경칼럼 게재] 기술과 사회변화, 그들 둘의 관계는?
[진의환 고문 매경 칼럼 게재]
만주 지린성(吉林省)에서 발견된 5세기 고구려의 무용총(舞踊塚)에는 호랑이와 사슴 등을 사냥하는 장면의 수렵도(狩獵圖)가 있다. 그림 중에 단연 압권은 달리는 말에 탄 채 상체만 뒤로 돌려 활을 당기는 무사의 멋진 포즈이다. 또 다른 무사 역시 말 위에서 호랑이를 향해 화살을 쏜다. 달리는 말 위에서 안정과 균형을 잡고 활을 쏘려면 안장과 그에 연결된 발걸이(등자鐙子)가 필수품이다. 수렵도의 무사들은 발걸이에 양 발을 끼고 매우 안정된 자세로 사냥을 하고 있다. 쇠로 만든 발걸이는 남부의 삼국시대 고분에서도 많이 출토되는 것을 보면 한반도에서는 일찍부터 흔히 쓰이던 간단한 마구(馬具)에 불과했지만, 그것은 7~8세기에 서유럽으로 전파되어 유럽 역사를 바꾼 기폭제 같은 획기적 기술이 되었다.
로마 시대에도 기마병은 있었지만 그들은 말이 끄는 전차를 탔지 말 등에 직접 타서 전투하지는 않았다. 로마제국 멸망 후 발걸이가 동양에서부터 유입되면서 기병은 전투력이 급속하게 증대되어 여러 전쟁에서 승리를 한다. 이를 본 왕은 교회 재산을 몰수하여 기사에게 주고 양성하니, 그 기사 계급이 영주로 성장하게 되고 곧이어 영주 중심의 봉건제도를 정착시키는 사회변화를 가져왔다. 말 안장의 한 부속품인 발걸이가 봉건사회 성립의 원인이었다는 논리는 ‘기술결정론(Technological Determinism)’을 옹호하는 미국의 기술사학자 린 화이트 2세(Lynn White Jr.)가 1962년에 주장한 것이다.
기술결정론은 기술이 독립적으로 사회변화를 가져온다는 학설이다. 그 논거는 많다. “나침반의 발명이 신대륙 발견을 가능케했고 그 결과 식민지 시대가 출현했다.” , “인쇄술의 발명으로 많은 사람들이 성서를 직접 소유하고 읽게 되자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그리고 “원자폭탄의 발명은 그 위험한 것을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관리할 강력한 통제적 정부를 가져왔다.” 등이 그 예이다. 기술혁신만이 인류 문명의 발전과 사회변화에 영향을 준다는 약간은 비타협적 논조 때문에 비판에 직면하지만, 그래도 기술의 발전이 사회의 구성원에게 보편적 이익이 된다고 낙관적으로 주장하여 아직도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사회에서 채택되는 것은 정치, 경제 또는 문화적 필요가 있기 때문이고, 기술은 사회변화의 여러 요소 중 하나일 뿐이며,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회구성론(Social Construction of Technology) ‘이 강력하게 기술결정론을 반박한다. 특히 어떤 신기술에 대한 이해관계자 집단이 있을 때 그들의 영향으로 또는 사회적 합의로 기술은 환영 받아 존속하기도 하고 또는 퇴출되기도 한다는 것이 사회구성론의 핵심이다. 집 안에 하인들을 놔두고 외출해야 하는 인도 안방 마님들은 냉장고에 내재된 잠금 장치 기술이 필요했고, 발전의 대부분이 수력인 브라질에서는 전기자동차가 그리 환영 받지 못하며, 한 때 기적의 약이라며 각광받던 살충제 DDT는 환경 호로몬이라는 위험으로 인정되어 사회적 합의로 퇴출당했다.
산업사회의 신기술에는 인지하든 못하든 간에 위험이 그림자처럼 따른다. 산업화로 물질적 풍요는 왔지만 동시에 위험 요소도 더 많아졌다. 한국에도 방문하여 무애거사(無碍居士)라는 호칭을 받은 유럽의 저명한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 1944~2015) 교수가 1986년 그의 저서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룬 선진국 현대사회는 ‘위험사회(Risk Society)’라고 규정했다. 위험이 사회의 중심에 상존하니 늘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디지털 기술은 결국에는 ‘생산성 향상’을 가져와 ‘혁명’이라는 명실상부한 타이틀을 거머쥘 것이다. 그러나 그 기술은 이용자 개인에게는 여러가지 위험, 총칭하여 디지털 리스크(Digital Risks)로 다가와 있어 우리 한국사회를 이미 ‘위험사회’로 격상시켜 놓았다. 많이 회자되는 리스크는 디지털 중독, 디지털 치매, 인포데믹스(정보전염병) , FOMO(고립공포감), 사생활 침해, 해킹 그리고 인터넷상의 부정확한 의학 정보만 믿고 잘못된 자가진단을 하는 사이버콘드리아 등이 있다. 그러나 그 위험의 숙주인 디지털 기술은 기술결정론에서 말한 것처럼 보편적 이익을 주고 있으므로 개인 이용자는 리스크를 인지는 하지만 자발적으로 감수(Assumption of Risks)하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리스크의 통제가 어렵고, 그것은 광범위하게 퍼지고 심화되어 궁극적으로는 사회를 크게 변화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에게는 ‘기술결정론’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4차 산업혁명의 디지털 기술이 야기할 사회 전체적 변화를 생각해 보자. 말 안장의 발걸이(등자)가 봉건국가를 탄생시켰다면, 블록체인(Blockchain) 기술은 비트네이션(Bitnation)이라는 사이버(가상) 국가를 탄생시켰다. 비트네이션은 개인정보 보호, 문화적 자유 그리고 특허와 독점권 폐지를 강한 신념으로 가진 사람들이 2014년 설립한 나라이다. 이 나라에서 국적 취득, 출생, 결혼, 사망 등 모든 기록은 블록체인 방식을 활용하여 관료없이 생성, 유지되고 증명서 발급을 해준다. 국경도 없고, 어디에 살든 관계없이 정부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교육기관과 제휴하여 기술교육 등을 제공하고, 디지털 화폐를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계획하고 있다. 모든 국민이 참여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직접 민주주의와 자치권을 인정한다. 비트네이션이 국민, 영토, 주권을 가진 현실의 실체국가를 얼마나 대체하고 국제적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아직 모르지만, 대안 국가로서의 기능은 어느 정도 할 것으로 기대되니,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서너 개의 국적을 가질 수도 있다. 비트네이션의 국민이 늘어나면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초 국적 테크기업들에 대해 실체국가들이 행사하지 못하는 통제를 어느 정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하나의 사회적 변화는 뉴칼라 계급의 등장이다. 뉴칼라(New Collar)란 기존의 블루칼라(육체 노동자)도 화이트칼라(전문, 사무직 노동자)도 아니며, 학력과 상관없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응하여 창의적이고 연구개발 능력이 뛰어난 새로운 노동계급을 말한다. 이 용어는 2016년 IBM이 처음 사용하였지만 앞으로 보통 명사처럼 쓰일 것이고, 뉴칼라는 인공지능 시대의 새로운 주역이 될 것이다. 현재 IBM은 그런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6년 과정의 ‘P(Pathway) 테크 학교’를 설립, 운영 중인데, 거기에서는 STEM 즉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엔지니어링(Engineering) 그리고 수학(Mathematics) 분야를 중점적으로 교육한다. IBM 본사에서 근무하는 임직원의 3분의 1은 뉴칼라이다.
뉴칼라가 4차산업혁명 시대의 안정적인 주역이라면 거기에서 소외되어 불안정하고 가난한 노동계층을 프레카리아트(Precariat)라 한다. 이는 이태리어로 ‘불안정한’ 이란 의미의 프레카리오(Precario)와 노동계급 프로레타리아트(Proletariat)의 합성어이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블록체인, 메타버스, 로봇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을 플랫폼에서 재빠르게 활용하여 이긴 승자는 그 과실을 거의 독식하여 사회적으로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를 가져올 것이다. 뉴칼라와 프레카리아트의 등장은 기술결정론이 가져올 사회변화처럼 보여 진다. 그러나 프레카리아트의 양산이라는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변화를 예방하려면 어떤 집단이 그 출현을 막는 방향으로 필요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거나 아니면 기존의 기술을 퇴출 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쯤 되면 기술의 사회구성론이 설득력 있게 보인다.
기술결정론이나 사회구성론 어느 한쪽만을 택해서 이 사회의 모든 변화를 통일성 있게 설명할 수는 없다. 기술과 사회의 관계는 위 두 관점을 절충해서 봐야한다. 그 둘은 상호작용을 통해 인류의 존엄성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야 하므로 가능하다면 기술에 대한 휴머니즘적 통제가 필요하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소프트랜더스 고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 교수]
기사원문: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기술과 사회변화, 그들 둘의 관계는? - 매일경제 (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