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의환 고문 매경칼럼 게재] 모빌리티 인문학
[진의환 고문 매경 칼럼 게재]
신석기시대 초, 야생의 소는 인류의 가축이 되면서 그 몸집이 30% 가량 작아졌다는 것이 학자들의 분석이다. 그 이유인 즉, 고기를 얻기 위한 가축이었으므로 성숙하자마자 도축하니, 암소는 점점 작은 송아지를 낳게 되었다는 추론이다. 생물인류학자인 앨리스 로버츠(Alice Roberts) 교수는 그의 저서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에서 소는 가축이 되면서 인간에게 길들여졌고 인간도 소에 의해 길들여졌다고 주장한다. 그 예로 우유를 계속 먹음으로써 획득한 유당(乳糖/젖당, Lactose) 소화능력을 든다. 즉, 소의 젖을 일찍부터 먹어온 몽골, 중앙아시아 그리고 북유럽의 인류는 타 지역 인류가 성인이 되면 자연스레 없어지는 유당 분해 효소 ‘락타아제’를 계속 생산할 수 있도록 유전자가 진화되었다고 말한다.
원래 포유류는 젖을 뗄 때가 되면 유당 분해효소가 없어지도록 알고리즘이 짜여져 있으므로 유당을 소화하지 못하는 유당불내증(乳糖不耐症)은 베이비부머 이전 세대에게는 정상이고, 나를 포함한 세계 인구의 과반수 이상이 그러하다. 한국 농경사회에서 소는 노동력으로서 한 식구였지 우유의 제공자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와 인류처럼 서로 다른 종의 생물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미치는 영향 때문에 각각 진화 한다는 것을 생물의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라 한다. 유명한 공진화의 예는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섬이 원산지인 커다란 별 모양 난(蘭)과 나방에 관한 것이다. <종의 기원>을 발표한 후 찰스 다윈은 그 난을 관찰하였다. 꽃잎 안쪽에서 꿀주머니까지는 길이 28cm나 되는 긴 관인 것을 보고, 그 꽃의 꿀을 따 먹고 수분을 도와주는 곤충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윈이 사망한 후에나 주둥이 길이가 28cm가 넘는 나방이 발견되어 다윈의 명성을 드높였다. 그래서 그 난은 복잡한 학명이 따로 있지만 ‘다윈 난’이라고 간단히 불린다.
바이러스는 새로운 숙주와 처음 만난 초기에는 치명적인 피해를 주지만 점차 그 독성을 약화시켜 숙주도 살리고, 자신도 오래 숙주에서 번식하는 방향으로 공진화 한다. 16세기 스페인 병사가 가져온 천연두 바이러스가 잉카 인구의 약 70%를 죽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 중세의 매독균과 20세기 말의 에이즈(HIV)균, 그리고 현재 점차 독성이 약화되는 코로나의 변종 등도 공진화로 설명 된다.
이제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서 ‘공진화’는 진화생물학만의 용어가 아니다.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요소들을 융합한 모빌리티(Mobility) 기술의 발전과 전개는 필연적으로 인간과 사회의 변화에 깊이 상호작용한다. 그런 변화를 성찰하고 설명하기 위해 사회학자들은 공진화를 차용하여 ‘인간과 기술의 공진화’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공진화가 생물 객체 간에 나타나는 변화라는 점을 확장해서 ‘기술’도 마치 일종의 생물 객체처럼 인정하는 것이 철학적 존재론에서 가능하므로 ‘기술과 인간의 공진화’라는 개념은 받아들일 만하다.
인류는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므로 타 동물과 구별하여 호모 파베르(Homo Faber; 공작인; 工作人)라 불린다. 안경, 망원경, 마차, 기차, 자동차, 드론 그리고 컴퓨터까지 모든 도구는 인간 신체의 기능적 확장이므로 이는 호모 파베르의 욕망이 구현된 것이다. 도구를 만드는 기술은 자연의 원리를 기본으로 하지만 인간의 욕망에 상호작용하여 진화해왔다. 인간은 그 기술이 낳은 도구에 의해 다시 변화되므로 기술과 인간은 ‘공진화’ 한다고 볼 수 있다.
인간과 공진화 하는 기술 중 ‘모빌리티(Mobility)’만큼 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주목받으며 인간에게 큰 변화를 푸쉬(Push)하는 것도 없다. ‘모빌리티 혁명’이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사용된다. 그러나 모빌리티는 ‘이동성’이라 번역되지만 그것이 학문적으로 내포하는 의미가 넓고 다양하므로 번역없이 그냥 ‘모빌리티’라 부른다.
모빌리티는 운동 등 단순한 신체적 움직임에서부터 드론, 자율자동차, UAM (Urban Air Mobility; 도심항공교통) 등 도구에 의한 인간과 사물의 움직임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또 컴퓨터 네트워크나 멀티미디어를 통한 정보와 이미지의 이동도 의미한다. 결국 모빌리티는 이동 자체 외에도 이동의 기반인 기술, 시간, 공간 그리고 사회적 환경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므로 인문학의 대상이 된다.
모빌리티 인문학은 모든 모빌리티 현상과 그 바탕인 기술이 인간사회와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 받으며 지속적으로 변화해 왔는지를 새로운 프레임에서 파악하려는 학문이다. 인문학적으로 사유되는 모빌리티의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모빌리티 즉 이동 및 유목은 애초부터 인간의 본질이었으므로 어떤 철학자가 호모 노마드(Homo Nomad)라 명명했다. 그 후 농업혁명으로 한 곳에 정착하는 정주(定住)가 보편적으로 되었다. 유목주의(Nomadism)와 정주는 철학적 존재론에 영향을 주었다. 즉, 정주성(定住性)의 임모빌리티(Immobility; 고정성, 실체의 불변성)를 존재자의 본질로 보고, 이동성의 모빌리티(유동성, 생성과 변화)는 예외적으로 보는 전통적 사상이 동서양에 공히 나타났다. 그러나 그에 대항하여 모빌리티를 존재의 보편적 본질로 파악한 종교(도가, 불교)와 현대 철학자들의 주장이 나타났으니 그것이 지금까지 철학사의 한 부분이다. 그러면 미래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다시 호모 노마드로 되돌아 간다라는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의 주장이 4차 산업혁명의 모빌리티와 함께 사유해 볼 때 강한 동감을 얻고 있다.
모빌리티가 야기한 사회학적 이슈로는 소외와 직주불일치(職住不一致)가 있다. 인류는 고도로 발달된 모빌리티 덕분에 육체적, 정신적 이동 가능 거리를 무제한으로 확대했고, 개개인은 언제나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별 인간은 모빌리티로 확장된 세계와 실제 현실의 단절을 상상하며 소외의 공포감(FOMO: Fear Of Missing Out)과 노모포비아(Nomophobia)에 늘 불안해한다.
한편 모빌리티의 증대로 공간의 거리는 획기적으로 압축되고, 시간은 단축되고 있다. 이를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는 ‘시공간 압축(Time-space Compression)’ 이라고 적절히 표현했다. 그러나 시공간 압축이라는 모빌리티의 혜택은 평등하지 않다. 저소득층과 여성 그리고 일부 취약계층은 일을 찾아 여전히 먼 거리를 장시간에 걸쳐 이동해야 하는 직주불일치(職住不一致)에 시달리고 있다. 반면 글로벌화와 스마트 시티는 시공간 압축의 과실을 누리는 수혜자이다.
너무 적게 이동하는 사람과 너무 많이 이동해야 하는 사람 사이의 불공평 등 여러 사회문제를 야기하는 것이 모빌리티이고, 동시에 인간과 사회의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서 점점 그 학문적 연구의 비중이 커지는 것 또한 모빌리티이다.
영국의 사회학자 존 어리(John Urry, 1946~2016)는 사회학 연구의 새로운 틀로서 ‘모빌리티 패러다임’을 그의 저서 <모빌리티>에서 2007년에 제시하였다. 인류의 모빌리티와 그를 둘러싼 환경 내지 사물과의 복잡한 연결성, 상호작용 그리고 공진화의 메커니즘을 모빌리티 관점으로 새롭게 해석하고 정립해야 할 때가 왔다. 그것이 4차 산업혁명이 우리에게 준 숙제이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소프트랜더스 고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 교수]
기사원문: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모빌리티 인문학 - 매일경제 (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