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의환 고문 매경칼럼 게재] 함께 깨지는 것이 Corruption!

1980년 ‘서울의 봄’ 시절에 우리에게 익숙해진 한시(漢詩) 한 구절이 있다. “봄은 왔지만 봄 같지가 않다”라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이 시구가 나오게 된 상황을 추적해 보면, 약 2,000여년 전의 ‘뇌물행위’가 나온다. 서시(西施), 초선(貂蟬), 양귀비(楊貴妃)와 함께 중국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왕소군(王昭君)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원래 한나라 황제의 궁녀였는데, 궁녀의 초상화를 그려서 황제에게 바치는 화공(畵工)에게 그녀만 뇌물을 주지 않았다. 앙심 품은 화공은 그녀의 모습을 실제와는 달리 못생기게 그렸고, 그 결과 황제는 그녀를 후궁으로 삼지 않았다. 오랑캐(胡)의 세력이 강력해져서 궁녀를 요구하니 황제는 초상화를 보고 못생긴 왕소군을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보내기 전 그녀를 보니 최고의 미인이었다. 화가 난 황제는 뇌물을 받고 못생긴 궁녀를 예쁘게 그려서 보여준 화공을 처형하였지만, 왕소군을 보내고 내내 아쉬워했다. 추운 오랑캐 땅에서 고향의 봄을 그리워하던 그녀의 심정이 ‘춘래불사춘’이니, 뇌물이 만연한 사회가 초래한 비극이다.

뇌물은 동서고금의 공통적 사회악이다. 기원전 1,750년경, 최초의 성문법인 함무라비 법전에 뇌물금지 규정이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뇌물은 ‘공정한 재판을 해하는 선물’이라며 금지되었다. 성경은 “뇌물은 어디를 향하든 형통케 한다(잠언)”며 그 효과는 인정하지만, 그것은 결국 “지혜로운 자의 눈을 어둡게 한다(신명기)”면서 뇌물을 받지 말라고 경고한다. 우리나라도 백제부터 조선의 경국대전까지 뇌물은 법으로 금지되던 것이다. 뇌물은 필연적으로 부패(Corruption)를 낳는다.

사실 선물(膳物)과 뇌물(賂物)은 글자 하나 차이인만큼 그 경계도 애매할 때가 많다. 선물에서 선(膳)자는 고기를 뜻하는 육달월(⺼; 肉) 변에 착할 선(善)자이니 제사 또는 행사에 쓰이는 물건이 착하게 정상 절차에 의해 전달된다는 의미이다. 반대로 뇌물의 뇌(賂)자는 재물(貝)이 제 각각(各) 은밀하게 전달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선물과 뇌물은 전달 과정의 떳떳함과 은밀성의 차이가 있지만, 근본적인 것은 ‘직무상 대가성’이 내포되어 있느냐가 법적 구분의 기준이다. 대가성이 있으면 뇌물이다. 그러나 직무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더라도 일정 금액 이상의 선물과 금품 등의 수수를 금하는 것이 ‘부정청탁 금지법’ , 일명 ‘김영란법’이다.

2016년 5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현대경제연구원이 그 경제적 효과에 대한 보고서를 냈다. “선물에 대한 수요는 1% 정도 줄어들겠지만, 법의 시행으로 한국에 대한 부패인식지수(Corruption Perceptions Index)가 OECD 국가 평균 이상으로 개선된다면 경제성장률은 0.65% 추가 상승할 것”이라는 것이 그 보고서의 핵심이다. 한국의 부패인식지수는 2016년 김영란법 시행 이전에는 5.4로 상위 29.5%에 해당하며 176개국 중 52위였다.

법 시행 5 년 후인 2021년의 결과는 6.1로 상위 17.8%로 상승하였고, 순위 또한 180개국 중 32위로 껑충 뛰었다. 보고서의 예상대로 부패인식지수의 향상은 한국 및 우리 기업의 대외신인도를 좋게 하여 경제성장에도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 참고로 부패인식지수는 독일의 NGO인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1995년부터 세계은행 등 13개 국제기관의 분석을 바탕으로 각국의 부패수준에 대한 인식도를 매년 발표하는 지수로서, 높을수록 청렴도도 높다는 의미이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해에 국제통화기금(IMF)은 전세계적으로 매년 약 2조 달러(약 2,300조원)의 뇌물수수가 발생하여 경제를 좀 먹는다고 발표하였다. 이는 전세계 GDP의 약 2%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 실례를 보자.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는 부패인식지수가 매우 낮고, 그만큼 관료의 청렴도는 떨어진다. 남미 최대 국가인 브라질의 경우, 조세부담율이 GDP의 33%나 되고 관료주의의 폐해 또한 크다. 관료의 부패, 높은 조세부담율, 근로자 편향의 복잡한 노동법과 노무관행 등 때문에 브라질에 있는 다국적기업이 부담해야하는 추가비용을 ‘브라질 코스트’라 한다. 2013년의 부패비용은 530억 달러로 GDP의 2.3%였다. 특히 부정부패로 인한 브라질 코스트에 대한 비판을 인식한 정부는 2013년부터 부패방지법(Clean Company Act)을 시행하고 있지만 아직 그 효과는 미미하다. 더 이상 브라질 코스트를 감당하지 못하는 포드, 메르세데스 벤츠, 아우디 등이 작년(2021) 부터 현지 자동차 생산공장의 가동을 중단하고 철수를 준비 중이다.

글로벌 기업 활동 중 외국 관료에게 뇌물 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구체적 노력은 1970년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촉발되었다. 그 사건 수사에서 많은 미국 기업들이 외국 관료와 정치인들에게 총 3억 달러의 뇌물을 주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입법이 발의되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해외부패방지법(FCPA; Foreign Corrupt Practices Act)이 1977년 발효되었다. 이 법은 미국인 및 미국기업의 해외 뇌물행위 등 부패관행을 규제하기 위해 제정되었으나 최근 사례를 보면, 미국에 상장되었거나 미국 내 자회사를 둔 외국기업 등에 대해서도 확대 적용되고 있다. 위반시에는 천문학적 숫자의 벌금을 부과한다. 지금까지 벌금 중 최고액은 2017년 스웨덴 통신회사 텔리아(Telia)에 부과한 9억 달러(약 1조원)이다.

미국의 해외부패방지법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으므로 국제적 공조 노력으로 OECD ‘뇌물방지협약(Convention on Combating Bribery of Foreign Public Officials in International Business Transactions)’이 38개국의 가입으로 1999년부터 발효되었다. 이 협약의 특이점 하나는 외국 관료에게 제공된 뇌물에 대해서는 손금 처리를 금지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 협약에 가입하였고, ‘국제상거래에 있어서 외국 공무원에 대한 뇌물방지법’을 시행 중이다. 이어 2003년에는 ‘UN 부패방지협약’이 발효되었다. 이렇듯 국제 비즈니스에서 뇌물에 대한 규제는 계속 심화되므로 글로벌 기업들은 부패방지를 위한 내부적 통제장치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 내부적 통제장치가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Compliance Program)이며, 줄여서 CP이다.

법이나 규칙을 지킨다는 ‘Comply’의 명사형 ‘컴플라이언스(Compliance)’는 법규준수, 준법경영, 준법감시 등의 여러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므로 통상적으로 굳이 한글로 번역하지 않고 원어 그대로 쓴다. CP는 기업이 경영을 하면서 국내 및 국제 법규 그리고 윤리까지 지키기 위한 내부 통제적 시스템과 프로그램을 말한다. 그 형태는 각 기업의 윤리헌장, 준법감시인/준법지원인과 그 관련 조직의 설치 운영 그리고 CP에 대한 상시 교육 프로그램 등으로 나타난다.

미국은 각 기업이 CP를 운영하도록 당근 정책도 쓴다. 1991년 발표한 기업 양형 지침(Sentencing Guideline for Organization)은 기업이 CP를 가지고 운영한다면 법규 위반시 손해배상이나 벌금의 감경사유로 인정한다. CP가 비지니스의 핵심 율법이 된 것이다. 또 1996년에는 캐어마크(Caremark) 케이스를 통해 CP를 구축하고 성실하게 관리해야 할 의무가 이사회에 있다고 판결하였다. 현재 전 세계적 추세는 CP가 단순히 공정거래와 부패방지 외에도 영업, 인사, 노무, 환경, 안전 등 기업의 일상적 경영 활동 전반으로 확대된다는 것이다. 이런 추세에 맞게 국제표준화기구(ISO)는 2016년 부패방지경영시스템 ‘ISO 37001’을 제정하였고, 곧 그것은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산업표준으로 인정되어 통용되고 있다.

이제 모든 공은 기업으로 넘어왔다. ESG 경영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CP의 적극적 도입 및 실행을 위해 최고경영자의 ‘강력한 의지표명’과 함께 관련 조직에 ‘힘 실어 주기’가 필요하다. 부패라는 영어 단어 Corruption은 ‘함께(Cor) 깨진다(rupt)’라는 어원을 가진다. CP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 회사와 그 명성은 하루아침에 떨어져 함께 깨질 수 있다. 유리, 도자기 그리고 명성은 쉽게 깨질 수 있다. 이에 워렌 버핏은 각각 이렇게 경고했다. “명성을 쌓기까지는 몇 년이 걸리지만 망치는 데는 단 5분이면 된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소프트랜더스 고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 교수]

기사원문: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만들어야 할 법칙은 아직도 많다! - 매일경제 (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