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의환 고문 매경칼럼 게재] 주재원, 자격을 넘어 품격으로!
[진의환 고문 매경칼럼 게재] 주재원, 자격을 넘어 품격으로!
미국 남부에서 주재원 생활을 할 때이다. 동료 주재원들과 일요일 오전에 골프를 즐겼다. 더운 날씨에 운동을 하니 자연 시원한 맥주 생각이 났다. 마침 음료수와 스낵을 싣고 돌아다니며 파는 이동 판매 카트가 지나가기에 불렀다. 맥주를 달라고 하니 카트 여직원의 눈길이 사나워지며 퉁명스럽게 없다고 대답하고 휭하니 가버린다. 그 다음 주에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분명 토요일에는 그 카트에서 맥주를 사 마셨는데 일요일만 되면 맥주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한참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며칠 전 현대차그룹이 미국에서 전기차 공장 기공식을 가졌다는 뉴스를 보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 현대차, LG, SK등 초국적기업들은 미국에 이미 가동 중인 공장이 있지만 반도체, 전기차 그리고 배터리 관련 추가 투자로 대규모 공장을 짓고 있다. 그들과 Supply Chain에 있는 계열사 및 중견기업 또한 동반 진출하며 투자를 해야 우리 초국적기업의 경쟁력이 확보된다. 이런 일련의 공장 건설 및 운영에는 기술과 관리능력이 뛰어난 많은 주재원이 필요하다. 각 기업은 지역전문가 양성 프로그램과 선발 기준에 따라 주재원을 교육하여 파견하고 있다.
한국의 세계 경제적 위상에 맞게 또 경제 안보적 상황에 부합하게 대규모 대미 직접투자(FDI)가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파견되는 주재원은 미국에 대해 심도 있는 공부를 할 때이다. 북미 전문가 수준의 임직원이라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미국을 빨리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지닌 주재원이 선발되어야 한다. 언뜻 생각하기에 우리가 미국에 대해서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가장 잘 파악하고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 내면을 그리 잘 알고 있지는 않다.
우리는 60~80년대에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미국의 겉모습만 보았다. 예를 들어, 전형적인 서부 또는 갱스터 영화에는 술집이 자주 등장하니까 당연히 미국은 술에 대해서는 가장 자유로운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연방 헌법으로 술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한 13년간의 ‘금주 시대’가 있었다는 것은 잘 모른다. 1933년 헌법의 수정으로 금주법은 폐지되었지만 아직도 남부의 일부 군(County)이나 도시에서는 자치법규로 술의 제조와 판매가 금지되고 있다. 그렇게 술의 판매가 금지되는 카운티를 드라이 카운티(Dry County)라 부른다. 위 골프장이 속한 카운티는 조금 완화해서 일요일만 술을 판매하지 않는 곳이었다. 모든 법에는 구멍이 있다. 술을 파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만 마시는 것은 자유이다. 이런 점을 찾아내는 것이 미국을 아는 것이다. 그 때 미국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일요일 골프 갈 때 집에 있던 맥주를 가져갔을 것이다.
네덜란드의 초국적기업 필립스는 주재원의 선발 기준으로 업무의 전문성과 통찰력 뿐만 아니라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받아들이는 개방성, 접근성, 의사소통능력을 본다. 비슷하게 일본의 초국적기업 마쓰시다는 ‘SMILE’을 본다. 즉, Specialty (전문성), Management Ability (관리능력), International (국제성), Language (언어) 그리고 Endeavor (노력)의 다섯 가지 기준이다. 기업에서 주재원 후보로 선발 될 정도이면 업무의 전문성, 관리능력, 언어, 즉, SMILE 중 S, M, L 은 이미 검증된 것이다. 해외에서 민간 외교관 같은 역할이 기대되는 주재원이므로 국제성(I)이 요구되고, 현지 문화와 사회통념에 맞게 자신을 빨리 적응시키려는 노력(E)이 필요하다.
근대 사회학의 거장 뒤르캠(E. Durkheim)은 사람을 ‘이중적 인간(Homo Duplex)’로 보았다. 동물과는 다르게 무한한 욕망에 사로잡힌 ‘육체적 인간’이 한 면이고, 윤리 규범 등 사회적 장치로 통제 받고 규제되어 욕망과 감정표현의 한계를 인식하며 절제하는 ‘사회화된 인격체’가 또 다른 면이다. 사회화된 인격체가 바람직한 인간이라고 보는 것이 그의 학설이다. 해외에 파견되는 주재원은 한국에서 사회화된 인격체이기에 우리나라에서는 별 문제없지만, 가끔 주재국 High Class 사회 구성원들의 눈에는 약간 미흡한 인격체의 모습으로 보일 때가 있다.
한국 임직원이 처음 미국으로 주재 나가서 ‘국제 사회적 인격체’로는 약간 미흡함을 스스로 보여주는 케이스 중의 하나가 ‘분노조절(Anger Management)의 실패’이다. 현지인들과 회의를 주재하던 한국인 임직원이 화를 못 참고 손으로 책상을 꽝꽝 치거나, 서류나 펜을 집어 던지거나, 고성으로 강압적이고 직설적인 영어를 내뱉는 것 등이다. 예를 들어, “Your opinion is totally wrong” 이나, “I ordered you that ~~” 등의 표현은 초국적기업의 주재원이 쓰기에는 좀 부적절한 영어이다. 화가 나더라도 꾹 참고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면서 “Your opinion may work in that situation, however, ~~~” 이라며 간접 우회적 표현을 써줘야 한다. “I ordered you that~~” 또는 “You must ~~” 등 강한 군대식 영어보다는 “I requested you that~~” 또는 “I’d like to ask you~~” 등 공손한 표현을 하는 것이 주재원의 품격이다.
간접 우회적 표현의 영어를 구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그런 표현에서 제안이나 불만을 파악해내는 즉, 행간(Between the lines)의 뜻을 읽는 것도 중요하다. 점심으로 된장찌개를 먹고 돌아와 현지인과 가까이 대면회의(Face to face meeting) 중이었다. 갑자기 그 현지인이 호주머니에서 껌을 꺼내 “이게 새로 나온 껌이고 나 이것 좋아하는데, 당신도 하나 드릴까요?” 하면서 자신도 씹고 주재원에게도 권한다. 그는 된장냄새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비슷한 케이스로, “한국 주재원은 외박을 자주 하시나 봐요?”라고 한 미국인이 농담처럼 말했다. 뭔가 복선이 깔린 것 같아서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라 하니 자신의 업무 파트너 주재원이 2~3일씩 같은 옷을 입고 출근한다는 것이었다. 알아보니 사실이었다. 그 주재원은 한국 공장에서 근무할 때 늘 같은 작업복을 입던 것이 습관이 되어 미국 화이트 칼라처럼 매일 와이셔츠를 갈아 입지 않았다. 그 현지인의 숨은 의도는 “그래서 냄새나는 것 같다”라는 불만의 표현인 것이다.
한국의 사무실 풍경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주재원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것이 몇 가지 더 있다. 오전에 업무시간 시작하자 마자 화장실에 가서 양치질 하거나, 점심 시간 이후의 양치질에 현지인들은 놀란다. 왜 집에서 하지 않고 업무시간에 할까? 그 밖에도 사무실에서 슬리퍼 신고 이리 저리 다니는 행위, 빈번한 흡연 이석, 회의 중 한국 주재원들만의 소근소근 한국말 협의 등이다. 현지 간부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현지 실정에 맞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본사 또는 최고경영층의 지시’라면서 막무가내로 밀어 부치는 일방적 지시이다.
사업상의 식사 또는 단체 회식 중의 에티켓도 잘 숙지하고 지켜서 주재원의 품격을 높여야 한다. 공적 식사 자리에서 주재원이 자주하는 실례는 과도한 시간동안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면 옆의 현지인이 대단히 불안해 한다. 주변 사람과 할 이야기거리를 미리 생각해 오고, 모임의 좌장인 경우 초반의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깰 간단한 조크(Joke)도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 삼가할 이야기거리로는 과거 미국 원조받던 가난한 시절, 한국 전쟁, 북한, 군사 독재, 종교 등에 관한 것 등이다. 또 회식 중 노래를 강요하거나 과도하게 술을 권하는 행위도 금물이다.
주재원의 자격은 회사가 정하고 평가한다. 그러나 품격은 순전히 개인의 몫이다.현지 문화와 정서에 맞는 언어로 업무지시를 할 줄 아는 주재원, 한국에서는 당연시되던 행동이라도 현지에서는 절제할 줄 아는 주재원, 그리고 에티켓을 잘 숙지하고 지키는 주재원은 자격을 넘어 품격 있는 주재원이 된다. 품격은 ‘국제 사회적 인격체’인 주재원이 스스로 연마하고 노력하여 자신의 행동거지에서 자연스럽게 풍겨 나오도록 해야 한다. 회사가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소프트랜더스 고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 교수]
기사원문: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주재원, 자격을 넘어 품격으로! - 매일경제 (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