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의환 고문 매경칼럼 게재] 인종차별과 아메리칸 드림
[진의환 고문 매경칼럼 게재] 인종차별과 아메리칸 드림
요즘 개가 한참 이슈이다. 미국에서 진돗개를 키우면 오해를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진돗개를 산보 시키다가 마주치는 타종 개는 진돗개의 포스에 압도되어 즉각 꼬리를 내린다. 미국 애견협회(AKC)에 등록되지 않은 품종이기에 미국 사람들은 진돗개를 잘 몰랐다. 그래서 미국 견주는 한국인은 늑대같은 야생동물을 길들여 기르는 것으로 오해하고 경계했다. 그때 공장 부근의 외진 단독주택에 살게 되어서 진돗개를 키웠다. 한국아줌마가 우리집에 오면 진돗개는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환영했다. 백인여자가 오면 한 번 “컹” 짖고 바로 꼬리를 흔들어 반겨준다. 그러나 전기 검침원 흑인 남자가 오면 아주 무섭게 짖으며 공격적으로 달려 들었다.
이런 인종 차별적 행동을 두고 주변 사람들은 영리한 진돗개가 미국 경찰처럼 ‘인종 프로파일링(Racial Profiling)’ 기법을 쓴다고 말했다. 인종 프로파일링은 수사 또는 보안 책임자가 인종에 따른 선입관에 기초하여 음주단속, 불심검문, 신분확인 등을 하는 용의자 색출 기법이다. 길가에 정지된 차에 백인이 있으면 경찰이 다가가 “May I help you?”라고 친절히 물어보지만, 흑인이면 도난 차량인지 차적 조회부터 한다는 것이 그 예이다. 9.11 이후에는 중동 출신을 공항에서 더 심하게 조사했다. 합법적 방법은 아니지만 뿌리 깊은 인종 차별적 관행이다.
미국의 역사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인종차별에서 시작하여 그것이 점차 개선되는 과정이다. 1863년 링컨의 노예해방 이후에도 인종차별은 여전히 합법적이었다. 흑인과 백인은 음식점, 화장실, 대중교통, 학교, 심지어 공원의 물먹는 수도꼭지에서도 따로따로 구분되었다. 이 분리의 관행이 합법적이라는 것은 1896년 플레시 케이스(Plessy v. Ferguson)에서 “구분되었지만 평등하다면 합법” 즉, ‘Separate but Equal’의 원칙으로 대법원에 의해 공고하게 확인되었다.
그러나 1954년에 흑백이 분리된 학교는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왔고 그로부터 인종차별 개선 노력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55년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 시에서 한 흑인 여자가 퇴근 중 시내 버스의 백인 칸에 앉았다는 이유로 축출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흑인 민권운동은 촉발되었다. 그 후 1963년 워싱턴, 200만명이 모인 집회에서 마틴 루터 킹목사의 유명한 ‘I have a dream’ 연설 이후 마침내 모든 인종에 백인과 동등한 권리가 부여되는 ‘1964 민권법’(Civil Rights Act of 1964)이 통과되었으니, 법적 평등권 확보는 링컨의 노예 해방 이후 100년 걸린 셈이다.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중남미나 미국은 유럽에서 건너온 정복자들의 땅으로 시작되어 이민자의 나라로 변화했다. 인종차별은 정복자들이 시작했다. 중남미의 스페인이나 북미의 초기 정복자들은 원주민을 카톨릭으로 개종 시키고자 노력 했으나 잘되지 않으니, ‘말하는 동물’로 취급하여 학살했다. 당시 북미에는 작게는 300만명에서 많게는 800만명의 인디언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고 추산된다. 그 원주민 90% 이상이 학살과 유럽인이 가져온 역병에 걸려 죽었다.
그러자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고자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수입했다. 인디언과 노예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던 역사에서 인종차별은 시작되었으나, 그 후의 유색인종 이민자에게도 적용되었다. 어느 사회이든 계층을 만들어 권력과 보상의 불평등을 유지하려는 것이 기득권층의 속성이다. 미국은 여러 민족이 뒤섞인 이민자의 나라이므로 초기 기득권자인 백인들이 피부 색을 기준으로 계층을 만들면서 그들의 이익을 추구하다 보니 점차 인종차별이 만연해졌다.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 답게 지금도 매년 100만명 정도의 이민을 받고 있으니, 현재 미국인의 약 10%는 미국 아닌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 유럽에서 오는 이민자들은 뉴욕 항을 통해 입국했다. 그래서 미국에는 ‘토니(TONY)’라는 남자 이름이 많다는 농담도 있다. 이민 가방에는 ’뉴욕 행 (To New York )’ 이라는 꼬리표가 붙었을 것이니 충분히 이해되는 농담이다. 뉴욕 항 입구에 있는 미국의 상징 자유의 여신상 기단부에는 이민자들에게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실현하도록 희망과 용기를 주는 시가 이렇게 새겨져 있다. “나에게 다오! 지치고 가난한 사람들을, 자유롭게 숨쉬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 (중략)~ 내가 황금의 문 옆에서 그들을 위해 등불을 들리라!”
‘황금의 문(Golden Door)’은 이민자들에게는 아메리칸 드림을 의미한다. 인종차별과 큰 빈부격차가 미국의 약점이라면 높은 개방성과 문화적 다양성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으로 무장한 이민자 문화가 미국의 강점이자 특성이라 말할 수 있다. 또한 이민자들은 사적 자유와 존엄성, 독립성과 절대적 권리 그리고 자조와 자기책임을 중시하는 개인주의적 가치관((Individualism)을 가진 것이 그 두번째 특성이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아메리칸 드림과 개인주의 가치관이 미국의 자본주의를 발달시킨 양대 기둥이라고 본다.
아메리칸 드림은 대부분의 이민 1세들이 품었던 미래 지향적 정신으로 누구든지 열심히 일하면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이다. 막 도착한 이민자는 사회를 지탱하는 필수 요소인 저임금의 노동력을 공급하는 경제적 역할을 하지만, 얼마 안 있어 그 자리는 새로운 이민자로 채워지니 아메리칸 드림에 활력이 붙었다. 통상적으로 아메리칸 드림의 소유자는 기업가적 도전정신, 합리적 계산과 노력 그리고 개인의 성취를 최우선시하는 부르주아적 사고와 행동방식을 가지므로 집단적,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에는 부정적 입장을 취한다. 그러므로 미국에는 역사상 사회주의가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횡행하지는 못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정복자들이 개척한 중남미는 원주민 학살의 공통점은 있었지만 그 후 전개는 미국과 다른 양상이다. 그 곳에는 아메리칸 드림과 같은 신념을 가진 이민자가 적었다. 초기 유럽 정복자와 이민자들은 가족을 동반한 정착 이민이 아니라 단신으로 와서 빨리 한 몫 챙겨 다시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일확천금의 꿈만 가지고 왔다. 필요한 노동력은 자신들의 혼혈아를 다산하여 채웠다. 미국이 이민자로 채워졌다면 중남미는 혼혈로 채워진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인종차별 이슈는 미국만큼 심각한 사회문제는 아니다. 대신 대부분이 가난하니까 다 같이 잘살아 보자는 사회주의적 기대는 정치적 포퓰리즘과 함께 넓게 뿌리내렸다.
며칠 전, 브라질 극우파 보올수나르 현 대통령과 온건 좌파인 룰라 전 대통령의 결선투표 양자 대결에서 간발의 차이로 룰라(Lula)가 당선됐다. 그는 자동차 공장 노동자 출신으로 77살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생애 세번째로 대통령에 당선 된 것이다. 그의 당선으로 중남미 정치 판도를 ‘핑크 타이드(Pink Tide)의 완성’이라 표현한다. 완전 붉은(Red) 극좌파가 아닌 사회주의 온건좌파 정권이니 ‘핑크’이고, 멕시코, 쿠바,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 칠레 그리고 브라질 등 중남미 대형 주요 국가는 모두 사회주의 좌파 정부가 장악했으니 ‘완성’이다.
중남미가 핑크로 물 들으니 미국은 개인도 외롭지만 이젠 국가도 외로워진다. 그 외로운 나라에 우리 초국적기업과 관련회사들이 대거 직접투자(FDI)로 진출하니 주재원과 그 가족들이 많이 파견된다. 미국에서 살아야 할 한국인들에게 인종차별은 늘 걱정스러운 현실이다. 그것은 신체적 특징을 구실로 하여 불평등하게 처우하는 것이므로 그 불평등을 없애 버리면 인종차별은 자연 소멸될 것이다. 미국에는 인종(Race), 피부색(Color), 종교(Religion), 성별(Sex), 본적(National origin) 등 다섯 가지를 이유로 하는 차별금지는 ‘1964 민권법’ 이후 여러 법령으로 이미 잘 정비되어 있다. 법적 불평등은 제거되었지만 생활에서 느끼는 차별은 현실이다.
그 현실적 차별을 극복할 방법은, 미국 역사에서 찾아 보면, ‘잘 사는 길’ 밖에 없다. 전 세계적으로 차별 받던 유태인, 그리고 이민 초기 그토록 멸시 받던 독일계에 대한 차별은 그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성취하여 잘 살고 있기에 이젠 사라졌다. 우리나라 초국적기업들은 현지에서 많은 미국인을 고용하고 있다. 그들과 주변 커뮤니티에게 한국 기업과 개인이 모두 미국 문화와 가치관을 잘 이해하고 존중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고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약 15년 전 우리나라 K 자동차사가 미국 남부에 공장을 짓자 그곳 백인 주민들이 잔디밭에 “Thank you Jesus for bringing K to our town!”이라는 팻말을 자발적으로 세웠던 것을 기억한다. 그 곳에 한국인에게 인종차별이란 없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소프트랜더스 고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 교수]
기사원문: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인종차별과 아메리칸 드림 - 매일경제 (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