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의환 고문 매경 칼럼 게재] 기업가는 아직도 유한계급인가?

[진의환 고문 매경 칼럼 게재]

약 12년 전 브라질에 처음 파견되어 공장 건설 프로젝트 추진할 때였다. 현지에 정착한 교포와 진출기업 대표들은 강도가 득실거리는 치안 부재의 사회에서 무사히 생존하려면 먼저 다음 두가지를 꼭 지키라고 조언해 줬다. 첫째, 값비싼 명품 브랜드는 몸에 지니지 말 것, 둘째, 강도를 만나면 저항하지 말고 순순히 모든 것을 줄 것. 실제로 한 교포 변호사는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중에 뚜벅뚜벅 걸어 들어온 강도에게 그의 팔이 비틀린 채 그 자리에서 명품 시계를 강탈당했다.

다음 해 브라질 노동계 인사들을 한국으로 초청하여 우리 나라의 발전상을 보여주었고, 바로 중국 자동차 산업현장까지 견학시켜 주었다. 그들은 브라질로 돌아오기 전 북경에서 저렴한 짝퉁(모조품) 명품 브랜드 시계를 많이 사 가지고 왔다. 그중 한 명이 출근 길 신호등 대기중에 권총 강도를 만났다. 그는 차고 있던 짝퉁 명품 브랜드 시계를 기꺼이 풀어주었다. 그러나 열흘 후 같은 자리에서 다시 그 강도를 만났다. 운 나쁘게도 그는 짝퉁을 빼앗긴 후라서 진품을 차고 있었다. 강도는 먼저 빼앗은 짝퉁을 차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짝퉁과 진품을 곰곰이 비교한 후 짝퉁을 조심하라며 진품을 돌려주었다. 정교한 짝퉁의 위력이었다.

트리클 다운 효과(Trickle Down Effect; 적하(滴下) 또는 낙수 효과)로 인해 명품 브랜드 시계는 사회의 밑바닥 노상강도도 갖고 싶은 베블런 상품(Veblen Goods)이 되었다. 베블런 상품이란 명품 시계, 명품 의류, 명품 핸드백, 보석, 고급 브랜드 자동차 그리고 고급 아파트처럼 아무리 가격을 올려도 수요가 증가하는, 그래서 전통적 수요공급의 법칙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비싸니까 더 갖고 싶은’ 상품이다.

미국의 진보적 경제학자인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 1857~1929)은 전통 경제학에서 가장 유명한 은유(Metaphor)인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품었다. 한계효용을 계산하여 소비하고, 한계비용에 의거하여 생산하므로 재화의 가격은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합리적으로 결정된다는 고전주의 경제 이론은 19세기 후반 미국에서나 지금이나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고전경제학자들이 ‘인간은 고통(지출)과 쾌락(수입)을 비교 분석한 후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본성을 파악하고 그 행태(Behavior), 즉 행동하는 방식에 대한 설명이어야 하는데, 인간은 늘 합리적인 판단만 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단순하게 전제한 것이 전통 경제학의 문제였다.

이에 베블런은 인간의 본성을 진화론의 입장에서 복잡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그는 1899년 ‘유한계급론’이라는 책에서 불합리한 인간의 소비행태를 설명하고, 동시에 상류층의 소비를 비판하였다. 수렵시대부터 인류의 역사에는 권력과 부를 가지고 있으므로 노동을 면제받은 유한계급(有閑階級; Leisure Class)이 존재하였고, 그들은 일반인들의 존경을 계속 받기위해 권력과 부를 입증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베블런은 그 입증 방법이 재화의 ‘과시적 소비’와 시간의 비생산적 소비인 ‘과시적 여가’라고 주장하였다.

생활 필수품이 아니므로 낭비적이거나 효용성이 낮은 재화일수록 부를 입증하는 효과는 더 크다. 일반인들은 그것을 가진 과시적 소비주체의 용맹함과 지위를 더 인정하게 되므로, 바로 그 점이 소비동기가 된다. 베블런의 설명에 따르면 과시적 소비와 과시적 여가활동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저녁 7시부터 새벽 1시까지의 사치스럽고 긴 만찬은 과시적 소비와 여가의 결합체이다. 즉, 유명 디자이너의 의상을 입고, 오랜시간을 투자하여 터득한 고급 와인과 시가를 음미하며, 그러면서도 복잡한 에티켓을 지키는 가운데 라틴어 오페라와 선탠에 대해 담소하는 것 등이 그들이 가진 시간과 금전적 능력을 동시에 과시할 수 있는 종합판이다.

이렇게 상류 유한계급이 과시적 소비와 여가를 연출하면 중류층은 이를 모방하고, 하류층은 다시 중류층을 모방하여 소비나 유행이 흘러 내려가는 현상을 ‘트리클 다운 효과’(Trickle Down Effect)라고 한다. 이 효과로 인해 과시적 소비는 사회의 맨 밑 바닥까지 퍼지게 되고 결국 그것은 견고한 관습이 된다. 브라질의 노상강도는 비록 진품과 모조품을 구별할 줄은 모르지만, 명품 브랜드만으로도 그는 위험한 범죄의 보상을 충분히 받은 것으로 만족하게 된다.

올해 코로나 여파로 국산 자동차 판매는 감소하는데 ‘강남 쏘나타’ 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며 수입차 판매는 계속 늘어나고 있고, 또 이젠 국산 자동차 중에서도 중형차가 아닌 대형 승용차가 베스트셀러로 등판했다. 그 뿐만 아니라 총체적으로 한국은 독일을 앞지른 세계 7대 명품 시장으로 급부상했다. 이런 통계는 더 이상의 생산적 활동이 필요 없는 ‘유한계급’이 많아졌다는 것을 의미할까?

베블런은 대공황 직전, 미국에서 자본주의의 부작용과 일부 자본가의 횡포 그리고 현실 경제가 이론대로 안 돌아 간다는 것을 본 후 비판적 시각에서 ‘유한계급론’을 저술했고, 기업가들을 싸잡아서 유한계급으로 몰아 부쳤다. 과연 기업가는 지금도 유한계급인가?

120년이 지난 지금, 인류의 긴 역사에 비교해 볼 때 한 해, 한 해 변화의 속도가 매년 혁명이 일어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4차 산업혁명의 소용들이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기업가는 더 이상 베블런이 생각하던 유한계급의 모습은 아니다. 혁신과 변화만이 유일한 살길인 급박한 상황의 기업가에게 유한계급의 페르소나(Persona)는 이제 필요 없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소프트랜더스 고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 교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기업가는 아직도 유한계급인가? — 약 12년 전 브라질에 처음 파견되어 공장 건설 프로젝트 추진할 때였다. 현지에 정착한 교포와 진출기업 대표들은 강도가 득실거리는 치안 부재의 사회에서 무사히 생존하려면 먼저 다음 두가지를 꼭 지키라고 조언해 줬다. 첫째, 값비싼 명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