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의환 고문 매경칼럼 게재] ESG는 투자이다!
[진의환 고문 매경 칼럼 게재]
요즘 도시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깜짝 놀라는 상황이 있다. 좀 한적한 이면도로나 우회전 길에서 스몸비 족(Smombie 族)과의 갑작스러운 조우(遭遇)이다. 스몸비란 스마트폰과 좀비(Zombie)의 합성어로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좀비처럼 길을 걷는 사람이다. 스몸비 족은 일반 보행자보다 사고 위험이 70%나 더 높기도 하지만 나쁜 자세와 전자파의 과도한 노출로 두통이나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스몸비도 안 좋지만,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전자파에 과도하게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전자파 과민증’도 초 연결사회(Hyper-connected Society) 속의 현대인에게는 장애이다. 두통, 현기증, 소화불량, 두근거림 등 전자파 과민증의 존재를 WHO(유엔 세계보건기구)도 인정은 하지만 아직 질병으로 공식화하지는 않고 있다. 노르웨이 최초의 여성 총리였으며 WHO 사무총장을 지낸 할렘 브룬틀란(Gro Harlem Brundtland)은 2002년 언론 인터뷰에서 ‘전자파 과민증’으로 두통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그녀는 주변에서 누가 휴대폰만 쓰고 있어도 두통이 온다고 했다. 주변 휴대폰의 전자파는 그렇게 심각한 두통을 유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녀는 왜 그런 증상을 언론에 말했을까?
1939년생인 브룬틀란은 의사이고 30대에 노르웨이 환경부 장관을 지낸 환경운동가이다. 최근의 한 의학 잡지에 의하면, 자연 친화적 성향의 사람일수록 전자파가 몸에 나쁘다고 믿으니 그 결과 전자파 과민증에 걸려 스스로 두통 등 신체적 고통을 당할 개연성이 높다고 한다.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의 하나이다. 그 전자파 과민증 사람에게 알리지 않고 전자파에 노출시키면 아무런 반응도 없다.
아무 효과도 없는 것을 진짜 약이라며 의사나 간호사가 주면, 환자는 그 효과를 느끼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가짜 약(僞藥) 효과)가 있고, 반대로 아무런 해가 없는데도 해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면 실제로 나쁜 증상을 느끼는 노시보 효과가 있다. 밤에 모르고 해골물을 달게 마신 원효대사가 아침에 구역질 증상을 느꼈다면 노시보 효과이다.
브룬틀란 총리는 1983년 UN의 세계 환경개발위원회(WCED) 의장이 되었다. 1987년 그녀는 환경보전운동이 단순한 구호에서 벗어나 정부와 기업의 실질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기초를 세운 역사적인 보고서를 UN에 제출하여 승인 받았다. ‘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라는 제목의 ‘브룬틀란 보고서’에서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의 개념을 깔끔하게 정리하여 전세계에 발표한 것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되, 미래 세대가 사용할 자원을 손상시키거나 낭비하지 않는 균형 있는 발전’이라고 정의하였다.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지금의 속도대로 성장과 개발을 계속 한다면 머지않아 성장의 한계에 부딪히고 지구 생태계에 대재앙이 올 것’이라는 위기 인식이었다.
브룬틀란 보고서에 따라 1992년 UN 환경개발위원회(WCED)는 178개국 정상들의 참여하에 CO2등 온실 가스 감축, 생태계 보존 그리고 물 문제 해결 등 3대 환경 협약을 도출했다. 이는 ‘파리기후협약’으로 발전되었고, 오늘날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의 ‘E(환경) 분야’의 가이드 라인으로 실효성 있게 구체화 되었다.
그 후 ‘지속가능성’은 UN과 관련 단체들의 노력으로 지구촌 모두의 책임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 글로벌 기업 등 현재 전 세계 15,400개의 조직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은 그 실행을 강요할 수 없는 ‘선택사항’이라서 기업은 ‘좋은 이미지를 위한 비용’ 정도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최근 지구 온난화 등 환경문제가 더욱 심각해지자,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려면 ‘환경(E)과 사회(S)’를 보호하는 것이 그 전제조건이라는 생각을 자본주의 맨 앞에 선 투자자와 금융기관들이 가지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그래서 2005년부터 ‘지속가능성’의 큰 틀에서 ‘ESG 경영’이라는 특화된 명제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특별히 2020년부터 ESG가 글로벌 기업에 ‘발등의 불’이 된 이유는 세계 최대의 자산운영사인 블랙록(BlackRocK)의 래리 핑크(Larry Fink) 회장의 서한 때문이다. 글로벌 주요 기업의 주주이며 및 6,700조원의 자산을 운영하는 투자자로서 그는 주요 기업 CEO에게 “앞으로는 기후 변화와 지속가능성을 투자의 최우선으로 삼을 것이니, 2021년에 각 기업은 탄소중립(Net Zero)을 실현할 추진 계획을 제출하라”고 공개 촉구했다. 즉 제대로 된 ESG 경영이 없는 기업에게는 투자하지 않거나, 의결권을 행사해 책임을 묻겠다는 선전포고였다. 이에 ESG 경영은 기업 및 정부 모두에게 심각한 부담으로 부상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바빠진 이들이 또 있다. ESG에 대한 전략, 관리 항목과 평가지표 수립 그리고 최종 진단과 평가까지 토탈 써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로펌, 회계법인, 컨설팅 회사 등이다(이하 ‘컨설턴트’라 통칭). 그들은 전담팀을 구성하며 ‘ESG 시장’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판을 벌리고 있다.
그들이 의사라면 기업은 환자이다. 의사는 가끔 치료 목적상 플라시보 효과를 이용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대기업도 중소기업도 컨설턴트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 컨설턴트가 ESG 전략과 지표수립 그리고 평가까지 모두 해 준다면 우려할 만한 상황이 나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실효성 없는 ESG 전략을 짜주고 그 실행까지 모두 양호하다고 평가 해주면 기업은 플라시보 효과에 기분 좋겠지만, 회사의 이해 관계자나 투자자한테는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또 정상적으로 잘하고 있는 경영활동에 ESG 결핍이라는 과도한 진단을 내려 주면 기업은 노시보 효과로 고통 받을 것이다.
ESG는 기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투자이므로 그 투자의 결정에 있어 경영자는 객관적 진단을 내려주는 진솔한 명의 같은 컨설턴트의 도움이 필요하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소프트랜더스 고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 교수]
기사원문: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ESG는 투자이다! - 매일경제 (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