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의환 고문 매경칼럼 게재] 달러의 불안한 미래
[진의환 고문 매경 칼럼 게재]
그리스 신화에는 많은 신과 영웅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신을 꼽으라 하면 아마 디오니소스(Dionysos; 로마에서는 바쿠스 Bacchus)일 것이다. 주신(主神) 제우스와 인간 여인 사이에서 태어났기에 원초적 신은 아니므로, 신의 계보에서 그는 ‘영웅(Hero)’이라 한다. 제우스의 사생아이니 그의 부인 헤라의 미움을 받아 인도 등 각지를 유랑하고 돌아왔다.
유랑 중 그는 포도 재배법과 포도주 기술을 전파하여 술의 신이 되었다. 그가 간 인도 유랑길을 따라 알렉산더 대왕이 포도주를 들고 원정한 것도 흥미롭다. 그는 영웅이었기에 그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겐 가차없이 응징하지만, 신으로 숭배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엇이든지 소원을 들어주는 관대함을 보였다.
어느 날 디오니소스의 스승이 술에 취해 길을 잃고 쓰러져 있으니 농부들이 그를 미다스(Midas; 영어로는 마이다스) 왕의 궁전으로 데리고 갔다. 미다스 왕은 그를 열흘간 술로 극진히 대접했다. 스승을 다시 찾은 디오니소스는 미다스 왕의 소원대로 그의 손이 닿는 것은 무엇이든지 황금으로 변하도록 보답했다. 그래서 ‘마이다스의 손(The Midas Touch)’ 이라는 말이 생겨났고, 오늘 날 무슨 사업이든 손대는 족족 성공시키는 실력자를 지칭하는 은유로 쓰인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고, 곧 그는 마법의 손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음식물에 손을 대면 바로 황금으로 변하니 먹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디오니소스에게 원상태로 돌려 달라고 부탁했다. 신이 시키는 대로 강의 상류로 가서 목욕을 하니 손은 원래대로 돌아왔고, 그 황금 기운은 강 바닥 모래에 남아 있어 지금도 많은 강의 상류는 금의 생산지이다.
16세기부터 유럽에서는 금과 은을 화폐로 사용하였다. 따라서 금과 은을 최대로 획득하는 것이 국부를 늘리는 길이었으니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젊은이들은 엘 도라도(El Dorado)를 찾아 신대륙으로 몰려 나갔다.
브라질 중부 내륙에도 미다스 왕이 목욕한 강이 있는 것 같다. 17세기 금을 찾아 나선 한 개척자가 어느 강의 상류에서 금이 나는 땅을 발견했다. 그 곳은 검은 금이라는 뜻의 오로 프레토(Ouro Preto)이고, 엄청난 양의 금이 생산되어 18세기 중반에는 미국 뉴욕 보다도 더 인구가 많은 중남미 최대의 도시가 되었다. 그 도시에는 내부 장식에만 금 430Kg을 쓴 황금 성당도 있다. 그렇게 생산된 금은 본국 포르투갈로 운송되었다. 그러나 포르투갈 뿐만 아니라 스페인 등 유럽으로 유입된 대량의 금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되었다. 금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물가를 크게 상승시켜 서민 생활을 더욱 핍박하게 만들었다.
반면 충분히 유입된 금을 기반으로 1816년 영국부터 유럽에서 금본위제가 실시되었다. 금본위제는 은행이 금을 보관하고, 그 금의 가치만큼 화폐를 발행하는 것이므로 언제든지 돈은 금으로 바꿀 수 있었다. 보유하고 있는 금의 가치 안에서만 화폐 발행을 하니 국가의 재정과 무역 수지는 균형을 유지했다. 그러나 약 100년 후인, 1931년 세계 1차 대전의 전비 때문에 금보다 돈을 더 많이 찍어낸 영국이 먼저 금본위제를 포기했다.
그 후 1944년, 금본위제는 국제무역에서 각국 통화 가치의 기준, 즉 환율을 정하기 위해 약간 변형되었다. 44개국 대표가 미국 브레튼우즈(Bretton Woods)에 모여 금 1온스(28.35그램) 당 미화 35달러로 고정하고, 다른 나라 통화의 가치는 달러 대비 고정환율로 정한 것이다. 당시 미국은 전 세계 금의 약 80%를 소유한 부국이었기에 금환본위제(Gold Exchange Standard System) 환율의 기준 국가가 될 수 있었다.
그로부터 27년 후, 전쟁은 다시 금본위제를 흔들었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막대한 국채를 발행하자 여러 나라는 미국에 달러를 반환하고 금을 요구했다. 이에 금 보유가 줄고 재정적자는 늘어나니 닉슨 대통령은 1971년 달러와 금의 교환 중지를 선언했다. 이로써 브레튼우즈 체제는 붕괴하고 금본위제는 소멸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미국의 영향력으로 인해 달러는 상대적으로 가장 안전한 통화로 인정되어 세계 경제의 기축통화로 여전히 남아있다. 사우디 아라비아와 미국이 원유 거래에서 달러로만 결제하게 합의한 것도 그 지위를 유지하도록 도와준 한 원인이다. 또 각국은 미국 국채를 앞다투어 매입하니 미국은 자아 도취에 빠져 재정적자에 둔감 해졌다. 외국에서 국채 상환을 요구하면 달러를 찍어 갚고 다시 국채를 발행했다. 이런 악순환이 50년간 지속되고 있으니 이제 각 국은 달러의 위상에 의심을 품고 금본위제에 향수를 느낀다. 금은 다시 환영 받아 값이 급격히 올랐다.
미국은 그들이 보유한 금의 양을 공개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금본위제로 되돌아 가지는 않을 것이다. 원유 거래를 달러로 하고 있지만, 4차 산업혁명으로 21세기 산업의 원유는 빅 데이터라는 점에서 무엇이 미래의 기축 통화가 될 것인지는 추측 가능하다. 빅데이터 채굴 주체이며 초 거대 플랫폼 기업인 페이스북이 그간 추진해온 글로벌 디지털 화폐 ‘디엠(Diem)’이나, 아마존의 가상화폐 추진 움직임 등을 주목해야 한다. 현재는 통화 발행권을 가진 각국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잠시 주춤하지만, 만일 이런 움직임에 동조하는 MZ 세대가 늘어나면 가상화폐는 달러나 기타 국가 단위 화폐를 누르고 언젠가는 기축통화가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각 기업은 환율 변동에 대해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환율은 아무도 모르는 신의 영역이다. 각 기업은 본업에 충실하고, 필요시 환 헤지(Foreign Exchange Hedge)는 하되, 환율변동으로 인한 이익을 챙기고자 억지 노력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금은 변하지 않지만 기축통화는 변할 수 있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소프트랜더스 고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 교수]
기사원문: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달러의 불안한 미래 - 매일경제 (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