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의환 고문 매경칼럼 게재] 고슴도치의 딜레마

[진의환 고문 매경 칼럼 게재]

한 청년이 도사 구루(Guru)에게 찾아가 도술을 가르쳐 달라고 청했다. 도사는 그를 제자로 삼았지만 매일 산에 가서 도끼로 장작을 패 시장에 내다 팔고 그 돈으로 콩을 사오라고 시켰다. 청년은 그렇게 10년을 한 후 불만을 토로했다. “10년 동안 도끼질만 했는데 언제 도술을 가르쳐 줄 겁니까?” 도사는 대답이 없었다. 청년은 도술 배우는 것을 포기하고 일상처럼 무아의 경지에서 도끼질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도끼가 닿기도 전에 장작이 저절로 쩍쩍 갈라지는 것이었다. 놀란 가슴을 안고 도사 구루에게 고했다.

구루는 장작 패는 것을 그만하고 창고에 쌓인 콩을 한 알씩 꺼내 도끼로 쪼개라고 했다. 콩 쪼개는 도끼질을 몇 년 더 했다. 어느 날 보니 도끼가 닿기도 전에 콩도 저절로 반쪽 나고 있었다. 구루는 이젠 콩자루를 통째로 놓고 도끼로 콩을 쪼개라고 했다. 또 몇 년을 하니 도끼가 콩자루를 치는 순간 자루 안의 모든 콩이 반조각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청년은 도술을 터득한 도사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50년 전 어릴 적 만화방에서 본 내용인데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1만 시간의 법칙(10,000 Hour Rule)’이 있다. 소질이 있는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한 심리학 교수가 연구보고서에서 처음으로 사용하여 유명해진 말이다. 위 ‘도사’ 이야기에 대해서는 일상의 일을 계속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며 수양하다 보면 전문가보다 더 고수인 ‘도사’의 경지에 들어 갈 수 있다는 의미이니 ‘1만 시간의 법칙’보다는 ‘사상연마(事上練磨)’라는 말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중요시하는 양명학(陽明學)의 창시자 왕양명(王陽明; 1472 ~ 1528)이 제자에게 한 말로, “사람은 일을 하면서 연마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뜻이니, 현재에도 딱 맞는 아주 현실적인 가르침이다. 베이비 부머 세대(1955~1964년생), X세대(1965~1979년생) 그리고 멀티플레이어(Multiplayer)를 지향하는 MZ 세대(1980년 이후)까지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실천적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스마트폰, 인공지능, 로봇, 5세대 이동통신기술(5G),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가상현실과 메타버스 등의 첨단 기술이 적용된 상품과 환경에 지속적으로 적응해 왔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다. 4차산업혁명으로 인해 이 모든 것들과 팬데믹 상황까지 갑자기 서로 연결되고 상호 작용하여 새로운 표준의 세상 즉 뉴 노멀(New Normal)이 다가오고 있고, 우리는 다시 거기에 적응해야 한다. 그러므로 일하면서 배우고 자신을 성숙시킨다는 ‘사상연마’의 개념을 가지고 늘 노력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기에 청춘을 바쳐 일한 베이비 부머 세대는 늘 피곤한 직장 생활을 해왔다. 새로운 컴퓨터와 프로그램, 스마트 폰 그리고 전자 제품이 나올 때마다 경쟁에서 앞서가기 위해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가 되려고 늘 긴장하며 사상연마를 해왔기 때문이다.

2021년 연말이다. 각 기업은 신규 임원 선임과 승진 그리고 새로운 경영진을 발표하였다. 현재 대기업의 경우 3세 오너 경영자들이 실질적 인사권을 가지고 있고 그들은 대부분 X 세대이다. 그래서 그들과 호흡이 맞는 즉 같은 코호트(Cohort; 5~10년의 연령차이지만 성장기에 같은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인 X 세대 중역과 CEO들이 대거 두각을 나타내며 지도층으로 부상하였고, 베이비 부머가 일선에서 물러나는 세대 교체가 거의 마무리 중이다.

X 세대가 사회의 강력한 지도층으로 부상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더 빨리 적응하는 MZ 세대의 부상 또한 괄목할 만큼 진행되고 있다. 소수의 X 세대 지도층을 제외하고는 곧 그들은 베이비 부머와 MZ 세대 사이의 ‘낀 세대’로 전락되어 그 왕성한 활동 기간이 베이비부머 세대보다도 더 짧아질 수 있다. 이미 MZ 세대가 야당 대표이고 기업에서도 MZ 세대가 중역으로 진급하고 있다. ‘연결과 상호작용’의 결과인 4차 산업혁명의 달콤한 열매는 MZ 세대가 더 능숙하게 다루며 누릴 것이고, 그 뒤편에서 베이비 부머 세대는 “도대체 언제까지 얼리 어답터가 되기 위해 발버둥쳐야 하고, 어디까지 쫓아가야 새로운 지식이 끝나는가”라고 회의하며 지쳐 앉아 있을 것이다.

X 세대와 MZ 세대는 서로 다른 코호트이다. 즉, 그 두 세대는 성장기에 각각 다른 경험을 하였기에 심리적 속성의 차이가 있어 가치관도 다르다. 그래서 사회와 기업의 지도층이 된 X 세대가 그 지위에 있을 때 사회적 안정 장치로 구축해야 할 일이 있다.

빅 데이터가 빠르고 적절한 의사 결정을 도와주는 상황에서 인공지능의 활용으로 인간은 이 세상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오만함에 빠져 인간성을 상실할 위험이 있으므로 스승 내지 구루(Guru)는 이 사회 곳곳에 늘 존재해야 한다. 자신이 무지(無知)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남들의 무지함을 일깨워 주던 소크라테스는 인공지능의 시대에도 꼭 필요하다. 정신적 표준 내지 흔들리지 않는 멘토(Mentor)로서 베이비부머 세대의 ‘도사’를 구루로 활용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X 세대 리더들이 지금 해야 할 일이다.

베이비부머 세대 구루가 평생 ‘사상연마’한 것은 도룡기(屠龍技)가 아니다. 도룡기란 ‘용을 도살하는 기술, 즉 현실에서는 용이 없으니 쓸모 없는 기술’을 말한다. 오랜 세월의 경험으로 그들이 취득한 기술, 노하우 그리고 지혜는 어느 상황, 어느 문제에도 응용되고 활용될 수 있는 가변형 그릇과 같은 것이다. 논어에 “군자불기(君子不器)”라 했다. ‘군자는 그릇에 갇혀 그 모양에 따라 자신의 능력이 한정되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군자의 현대적 의미는 사상연마를 한 구루이다. 도사가 된 청년은 장작과 콩만 쪼개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치지 않고도 반쪽 낼 수 있다.

베이비부머, X 그리고 MZ 세대는 각각 다른 코호트이기 때문에 생각하는 바가 서로 다르지만, 몸에 뾰족한 가시가 달린 고슴도치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이 세 세대의 고슴도치들이 추위를 견디고자 너무 가까이 모여 몸을 맞대면 서로의 가시에 찔려 불편하다. 적당한 공간을 두고 같이 모여 앉아 서로의 기술과 지혜를 활용하는 ‘고슴도치의 딜레마’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소프트랜더스 고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 교수]

기사원문: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고슴도치의 딜레마 - 매일경제 (mk.co.kr)